
25일 몽양 여운형 선생 탄생 119주년을 맞아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신원리 생가터에서 열린 ‘몽양 여운형의 날 기념행사’에서 양서초등학생들이 애국가 4절을 부르고 있다. . 양평/연합
몽양 여운형(1886~1947) 선생이 태어난 지 119년만인 25일 오후 2시 처음으로 탄생 기념행사가 열렸다. 경기 양평군 양서면 신원리 묘골 몽양 생가 터에서는 2000년부터 소수 인사들만 모여 해마다 7월 기일에 맞춰 조촐한 추모제를 열어왔다. ‘몽양 여운형의 날’로 이름 붙여진 이날 행사는 양평 몽양 선생 기념사업회와 양평문화원, 양서면 이장협의회가 공동 주최했으며, 여철연 몽양 선생 기념사업회장과 몽양 수행 비서를 지낸 이기형 민족작가회의 고문, 주민과 학생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양일고교 윈드 오케스트라의 축하연주 속에 생일상 차리기, 개회사, 축사에 이어 양수초교 합창단 50여명이 애국가 4절을 합창하고 강원용 목사가 ‘2005년에 돌이켜보는 몽양 여운형’을 주제로 강연하는 순으로 진행됐다. 강 목사는 “21세기 새로운 지도자를 역사 인물 중에서 찾는다면 그가 바로 몽양 여운형이었고 이 분을 위해 애쓰는 것이 곧 애국”이라며 “그는 좌익과 우익, 남과 북, 동과 서, 세대간 벽을 뛰어넘는 훌륭한 지도자였다”고 회고했다. 기념행사는 이 고문이 지은 <민족의 별>이란 기념시를 낭송과 바리톤 김완기의 축가로 마무리됐다. 한편 몽양은 생가에서 청년기까지 살며 일본담배 금연운동 등을 벌이면서 농촌과 민족운동의 싹을 띄워왔지만, 생가는 한국전쟁 때 불에 타 없어져 현재는 300여 평의 생가 터와 2002년 양평기념사업회가 세운 기념비만 남아 있다. 몽양은 1919년 3월 세워진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원을 역임하는 등 독립운동을 해왔으며 일본 패망을 예상하고 1944년 8월 ‘조선건국동맹’을 조직해 광복에 대비했으며 1945년 ‘조선건국준비위원회’ 만들어 1946년 5월 좌우합작운동을 벌이다 1947년 7월19일 서울 혜화동 로터리에서 권총으로 피살됐다. 몽양은 올해 3월 건국훈장 대통령장 서훈을 받아 역사적으로 복권됐으며 기념 사업회를 중심으로 생가 터 복원작업이 추진되고 있다. 양평/김기성 기자 rpqkf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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