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규 살해지시’ 발표에 일부서 의문 제기
재야인사 “결국 정권이 죽인 셈” 박정희에 총을 겨눠 유신시대의 종말을 고했던 김재규는 박정희 정권의 실정을 폭로하고 다녔던 김형욱의 살해를 지지했을까? 10·26사건을 조사한 신군부는 김재규가 김형욱 살해를 지시한 사실을 왜 밝혀내지 못했을까?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이하 진실위)가 26일 ‘중간발표’한 김형욱 실종사건의 진실은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의 지시로 프랑스에 있던 중정 거점요원들과 이들이 고용한 제3국인이 납치·살해’한 것이다. 진실위는 김재규 부장이 1979년 9월말 이전 중정의 프랑스 거점장이던 이상열 주프랑스 공사에게 김형욱 살해를 지시했으며, 이 공사가 적임자로 선정한 중정 연수생 신현진, 이만수(이상 가명)가 살인청부를 받은 동유럽권 출신의 제3국인 2명과 함께 10월7일 승용차로 납치한 뒤, 파리 근교로 끌고가 제3국인이 권총으로 살해했다고 밝혔다. 진실위는 김재규의 살해 지시와 관련해 이 공사가 연수생 신씨에게 김형욱 살해 임무를 주면서 “김재규 부장님으로부터 지시를 받았는데 자네가 적극적으로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을 유력한 근거로 제시했다. 또 김재규가 김형욱씨 살해 뒤 신씨를 격려하고 돈과 살림집 등을 마련해 준 것 등도 유력한 증거라는 것이다.
강신욱 변호사 “사형직전까지 물었으나 김형욱 사건 전혀몰라” 그러나, 이번 진실위의 중간발표에서 김재규 지시설에 의혹을 제기하는 주장도 만만치 많다. 진실위 발표내용을 보더라도 김재규 지시설은 관련자들의 진술과 정황상 추측일 뿐이고 문서상으로 확실히 밝혀진 부분은 없다. 또 김재규가 김형욱 실종사건 보름 뒤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했으며 김재규를 체포한 신군부가 이같은 사실을 밝혀내지 못한 것도 의문점으로 남는다. 10·26사건에서 김재규 변론을 맡았던 강신욱 변호사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국정원 진실위) 발표는 사실이 아니다”며 “전두환이 김재규 약점을 얼마나 열심히 찾았느냐. 김재규를 역적으로 만들기 위해 어마어마한 고문을 했는데, (김형욱 살해했다는) 진술을 못 끌어냈겠느냐”고 일축했다. 강 변호사는 “중정 요원이 했다면 박종규나 차지철 라인에서 개입했을 수도 있지 않느냐”며 “김재규가 죽는 순간까지 자주 물었는데, 김형욱 사건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강 변호사는 또 “김재규는 스타일상 인간적인 면이 있는데 그런 지시를 내릴 수가 없다”며 “이런 식으로 결론이 내려진다면 김재규 명예만 훼손시키겠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사저널 기자 “2주 뒤 박정희 죽인 사람이 박정희 명예 지켜주려 그리 했을까” 김형욱씨 양계장 살해설을 제기했던 <시사저널> 정희상 기자도 “김재규가 김형욱을 살해하라고 했다면 동기를 조사했어야 하는데 동기에 대한 조사 없이 신씨의 진술에 의해서 단정을 내린 것은 국정원 조사의 맹점”이라며 “2주 뒤에 박정희를 죽였던 사람이 박정희의 명예를 지켜주기 위해 그런 지시를 했는지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진실위 관계자는 “전두환 전 대통령과 이학봉 수사국장을 모두 조사했고 합동수사부 자료도 모두 조사했으나 김형욱 사건과 관련한 심층적인 내용은 찾을 수 없었다”며 “신군부는 박정희 시해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조사가 시급했기 때문에 김형욱 문제에 신경쓸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기자는 자신의 기사에 등장했던 암살조장 이아무개씨와 관련해 “이씨는 ‘국정원 발표내용 안에 사건 현장 인물로 자신의 이름이 나오지 않으면 국정원 발표를 믿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는데, 국정원은 ‘이씨의 의도를 알기 때문에 조사할 필요가 없다’며 조사 자체를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설령 신현진의 진술이 진실일지라도 다른 어떤 기록도 없이 한 사람의 정황진술만으로 전체적으로 완결된 실체적 진실을 밝힐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결국 이 사건은 진실게임의 미궁으로 빠져들 것 같다”고 내다봤다. 한편, 김재규 복권운동을 벌이고 있는 한 재야 인사는 “광주민중항쟁의 발포 명령을 전두환이 내렸다는 것을 세상사람들이 다 아는 것처럼 김형욱을 박정희 정권이 죽였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에 있느냐”고 반문했다. 김형욱 살해 지시를 누가 했느냐는 문제는 지엽단말적인 문제일 뿐, 사건의 본질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정권 차원에서 자행된 암살’이라는 얘기다. <한겨레> 박종찬 이순혁 이승경 기자 pjc@hani.co.kr
재야인사 “결국 정권이 죽인 셈” 박정희에 총을 겨눠 유신시대의 종말을 고했던 김재규는 박정희 정권의 실정을 폭로하고 다녔던 김형욱의 살해를 지지했을까? 10·26사건을 조사한 신군부는 김재규가 김형욱 살해를 지시한 사실을 왜 밝혀내지 못했을까?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이하 진실위)가 26일 ‘중간발표’한 김형욱 실종사건의 진실은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의 지시로 프랑스에 있던 중정 거점요원들과 이들이 고용한 제3국인이 납치·살해’한 것이다. 진실위는 김재규 부장이 1979년 9월말 이전 중정의 프랑스 거점장이던 이상열 주프랑스 공사에게 김형욱 살해를 지시했으며, 이 공사가 적임자로 선정한 중정 연수생 신현진, 이만수(이상 가명)가 살인청부를 받은 동유럽권 출신의 제3국인 2명과 함께 10월7일 승용차로 납치한 뒤, 파리 근교로 끌고가 제3국인이 권총으로 살해했다고 밝혔다. 진실위는 김재규의 살해 지시와 관련해 이 공사가 연수생 신씨에게 김형욱 살해 임무를 주면서 “김재규 부장님으로부터 지시를 받았는데 자네가 적극적으로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을 유력한 근거로 제시했다. 또 김재규가 김형욱씨 살해 뒤 신씨를 격려하고 돈과 살림집 등을 마련해 준 것 등도 유력한 증거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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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실위 발표내용 - 김재규 살해지시와 관련한 부분
-김형욱 실종 사건이 김재규 당시 중정부장의 지시에 의해 이상열 공사 주도로 진행되었다는 것은 다음의 이유로 확실시 됨. 79년 9월말 이상열 공사가 연수생 신현진에게 김형욱 살해 임무를 부여하면서 김재규 부장의 지시임을 분명히 밝힌 점.(신현진 진술) 이상열 공사는 파리 샹제리제 거리의 ‘푸께’ 카페로 신현진을 별도로 호출해 “김재규 부장님으로부터 지시를 받았는데 자네가 적극적으로 해 주었으면 좋겠다”면서 임무를 부여.
진실위 발표-김형욱 살해 뒤 김재규의 말과 행동
-신현진는 귀국후 79년 10월13일께 김재규 부장에게 김형욱 처리결과를 보고했으며, 김재규 부장은 보고를 받자 “수고했어, 잘 했어. 우리가 그런 놈을 그냥 놔두면 우리 조직은 뭐하는 곳이야”라고 격려함.
-신현진이 살해에 사용한 권총을 분실하였다고 보고하자, 김재규 부장은 “괜찮아. 소련제 권총이니 발견되어도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면서 현금 300만원과 20만원이 든 봉투를 각각 2개씩 주었음.
-이어 김재규 부장은 신현진에게 “근무하고 싶은 데가 어디냐”라고 묻고, “정책연구실에서 근무하면 어떻겠나. 내 직속기관이야”라며 즉석에서 비서실장에게 발령을 지시함. 김재규는 신현진에게 “앞으로 장가도 가야하고 집이 하나 있어야 되겠군. 신혼 살림을 하려면 한 4~50평 정도면 안되겠나”라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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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욱 변호사 “사형직전까지 물었으나 김형욱 사건 전혀몰라” 그러나, 이번 진실위의 중간발표에서 김재규 지시설에 의혹을 제기하는 주장도 만만치 많다. 진실위 발표내용을 보더라도 김재규 지시설은 관련자들의 진술과 정황상 추측일 뿐이고 문서상으로 확실히 밝혀진 부분은 없다. 또 김재규가 김형욱 실종사건 보름 뒤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했으며 김재규를 체포한 신군부가 이같은 사실을 밝혀내지 못한 것도 의문점으로 남는다. 10·26사건에서 김재규 변론을 맡았던 강신욱 변호사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국정원 진실위) 발표는 사실이 아니다”며 “전두환이 김재규 약점을 얼마나 열심히 찾았느냐. 김재규를 역적으로 만들기 위해 어마어마한 고문을 했는데, (김형욱 살해했다는) 진술을 못 끌어냈겠느냐”고 일축했다. 강 변호사는 “중정 요원이 했다면 박종규나 차지철 라인에서 개입했을 수도 있지 않느냐”며 “김재규가 죽는 순간까지 자주 물었는데, 김형욱 사건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강 변호사는 또 “김재규는 스타일상 인간적인 면이 있는데 그런 지시를 내릴 수가 없다”며 “이런 식으로 결론이 내려진다면 김재규 명예만 훼손시키겠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사저널 기자 “2주 뒤 박정희 죽인 사람이 박정희 명예 지켜주려 그리 했을까” 김형욱씨 양계장 살해설을 제기했던 <시사저널> 정희상 기자도 “김재규가 김형욱을 살해하라고 했다면 동기를 조사했어야 하는데 동기에 대한 조사 없이 신씨의 진술에 의해서 단정을 내린 것은 국정원 조사의 맹점”이라며 “2주 뒤에 박정희를 죽였던 사람이 박정희의 명예를 지켜주기 위해 그런 지시를 했는지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진실위 관계자는 “전두환 전 대통령과 이학봉 수사국장을 모두 조사했고 합동수사부 자료도 모두 조사했으나 김형욱 사건과 관련한 심층적인 내용은 찾을 수 없었다”며 “신군부는 박정희 시해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조사가 시급했기 때문에 김형욱 문제에 신경쓸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기자는 자신의 기사에 등장했던 암살조장 이아무개씨와 관련해 “이씨는 ‘국정원 발표내용 안에 사건 현장 인물로 자신의 이름이 나오지 않으면 국정원 발표를 믿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는데, 국정원은 ‘이씨의 의도를 알기 때문에 조사할 필요가 없다’며 조사 자체를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설령 신현진의 진술이 진실일지라도 다른 어떤 기록도 없이 한 사람의 정황진술만으로 전체적으로 완결된 실체적 진실을 밝힐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결국 이 사건은 진실게임의 미궁으로 빠져들 것 같다”고 내다봤다. 한편, 김재규 복권운동을 벌이고 있는 한 재야 인사는 “광주민중항쟁의 발포 명령을 전두환이 내렸다는 것을 세상사람들이 다 아는 것처럼 김형욱을 박정희 정권이 죽였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에 있느냐”고 반문했다. 김형욱 살해 지시를 누가 했느냐는 문제는 지엽단말적인 문제일 뿐, 사건의 본질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정권 차원에서 자행된 암살’이라는 얘기다. <한겨레> 박종찬 이순혁 이승경 기자 pj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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