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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중간발표’는 했지만…풀어야 할 의문 첩첩

등록 2005-05-26 17:12수정 2005-05-26 17:12

낙엽덮는 걸로 주검 처리 끝?…카페 이름은 기억, 살해장소는 가물?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위원장 오충일 목사)의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실종사건에 대한 조사 결과 중간발표는, 26년간 의문과 낭설에 싸여왔던 사건의 배후 인물(김재규)과 사주·연루·가담자들의 증언을 청취해 윤곽을 어느 정도 밝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번 중간 발표에서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대목들이 많아, 국정원 진실위는 최종 발표까지 적지 않은 숙제를 떠안게 됐다.

우선 이번 발표는 국정원 존안자료를 비롯해 3만여쪽의 방대한 분량의 자료와 김형욱 전 부장의 살해에 직접 관련된 인사 33명의 진술을 토대로 진행됐다고 하지만, 사건의 얼개를 구성하는 주요 대목은 살해에 직접 가담한 연수생 자격의 국정원 직원 신현진(가명)·이만수(가명)씨의 진술에 의존하고 있다. 두 명 중에서도 이씨는 구체적인 진술을 피하고 사건 직후 귀국해 김일곤 차장보에게 결과를 보고하고 돈을 받았다는 진술 정도다.

따라서 김재규 전 부장이 이번 사건의 배후라는 대목, 김형욱 전 부장의 납치·살해 등 사건의 실체에 관한 대부분이 신씨의 진술에만 뿌리를 두고 있다. 이번 국정원 조사 결과를 신뢰하지 않는 쪽에서 보자면, “신씨의 일방적인 진술”이라고 반박할 여지가 있는 것이다. 신뢰도 측면에서 보자면 중앙정보부 특수비선공작원 출신이라는 이아무개씨가 지난달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김 전 부장을 납치해 파리 외곽 양계장에서 분쇄기에 넣어 살해했다”는 주장과 무게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진실위 “진술뿐 아니라 국정원 내부자료로 정황 뒷받침”

이에 대해 국정원 진실위 쪽은 “신현진 진술 외에도 그 당시 귀국일과 정황을 알려주는 국정원 내부 자료들이 그 사람들을 지목하고 있기에 진술의 신빙성이 있다고 본다”며 “단순히 진술에 의존한 것만이 아니라 자료에도 근거했다”고 반박하고 있다. 하지만 진실위 쪽도 “사건의 완전한 진실 규명을 위해서는 살해 지시 수령, 가담자 물색 및 모의, 권총·독침 등 사전 준비, 사후 처리, 김재규 부장 보고 등 사건 내용을 소상하게 알고 있을 이상열 공사의 진솔한 고백이 있어야 한다”고 인정했다.

살해사건의 구체적인 대목에서도 고개를 갸웃거릴 만한 부분이 많다. 발표 뒤 이어진 기자들과의 일문일답에서도 이런 부분이 제기됐다. 신현진의 의뢰를 받은 ‘제3국인’ 2명이 소음기가 달린 소련제 권총으로 김 전 부장을 살해하고 주검을 낙엽으로 덮었다는 부분과, 그들이 권총을 분실했다는 대목이다. 살해현장이 인적이 드물고 낙엽이 많이 쌓이는 곳이라 빨리 손쉽게 ‘처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을지 몰라도, 신씨 등에게는 ‘살해’ 못지 않게 핵심적인 대목이 ‘은폐’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낙엽이 사라질 무렵 주검과 살해도구가 발견되고, 프랑스 정부가 이 사건을 수사하게 될 경우를 가정하지 않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실제 신씨는 김 전 부장의 여권과 지갑은 이상열 공사에게 주고, 시계는 세느강에 버렸으며 바바리 코트와 벨트는 가위로 잘게 썰어 버릴 정도로 ‘증거인멸’에 주력했다. 이에 견줘 더 중요한 살해현장에는 핵심증거물들을 널어놓고 온 셈이 된다.

국정원 진실위 쪽도 이 대목을 곤혹스러워했다. 진실위 쪽은 “사실 이 부분에 대한 조사가 미약해 조사결과 중간 발표를 늦추려 했었다”며 “(당사자들이) 자세한 진술을 하지 않고 있지만 본인들은 허술하게 처리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낙엽지는 시기에 내리막길의 낙엽 수북한 곳에 유기해 땅을 팔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살해장소 현장조사 필수…결정적 물증 찾아야

살해 장소는 사건의 실체를 밝힐 수 있는 핵심 고리인 만큼 온갖 억측과 낭설들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현장을 찾아야 했다. 주요 진술인인 신씨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지만, 신씨는 다른 대목에서 이상열 공사와 만난 카페 이름, 살해 도구를 산 시장 이름, 애초 살해장소로 모의했던 파리 근교의 ‘샤또’(농원이 딸린 옛날 성) 등을 정확히 진술했다. 따라서 신씨 자신이 운전해 “개선문 앞 로터리를 우측으로 돌아 시 외곽 순환도로로 향하던 교외, 길가에 가로등이 켜져 있는 작은 마을을 지나 인적이 드물고 작은 숲이 내리막 방향으로 이어진 장소” 등도 의지만 있다면 찾아낼 수 있지 않겠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진실위 쪽의 발표를 그대로 수용하더라도, 살해 현장의 증거물들이 25년이 넘도록 아무에게도 발견되지 않은 점도 의문이다. 파리 경시청 등 프랑스에 당시 수사기록을 요청했으나 진실위 쪽은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는 답변을 들었다.

김 전 부장을 살해한 동기와 배후 역시 이번 발표에서는 명쾌하게 설명되지 않았다. 이번 발표에는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지목됐으나 △10·26을 앞둔 시점에 김형욱 전 부장을 살해할 이유가 있는지 △이후 등장한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 등 신군부 쪽이 밝혀내지 못한 이유 등이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남는다. 이번 발표 전까지는 김 전 부장과 충성경쟁을 벌였던 차지철 당시 경호실장도 배후로 꼽혀왔다. 어쨌든 이번 중간 발표는 아직 미완이다. 어느 정도 진실에 가까운지는 이를 입증할 만한 결정적인 물증을 찾는데 달려 있다고 봐야 한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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