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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블로그] 광화문광장, 정부의 허위의식

등록 2009-08-10 14:31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의 중심에 ‘광장’이 하나 새로 들어섰다. ‘광화문광장‘이다. 그러나 개방 이틀 만에 20여명의 시민이 광화문광장 조례 폐지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가, 불법집회로 낙인찍혀 10명이 연행되는 일이 벌어졌다. 작은 에피소드로 끝날 수도 있는 사건이었지만, 어쩌면 이 사건은 광화문광장의 정체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될 것이다. 그 정체성은 한마디로 '정체불명'. 정체불명의 이 광장은 앞으로 정체불명의 현 정부를 상징하는 장소로 계속 기억될 것 같다.

불과 1년 전 이곳에는 ‘명박산성’이 있었다. 명박산성이 있던 바로 그 자리에 ‘광장’이 생긴 것이다. 명박산성과 광장. 아무리 생각해도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다. 서울시는 차량이 질주하는 도로를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돌려주려고 하는 듯하다. 처음 만들 때 경찰이 집회의 장소로 될 것을 염려해 반대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서울시와 경찰의 절충으로 탄생한 게 지금의 광화문광장이다. 광장과 동시에 광장 사용을 통제하는 조례도 같이 만들었다. 사람을 모이게 만든 뒤, 사람이 모이는 것에 제한을 둔 것이다. 뭔가 앞뒤가 맞지 않다. 광장이 뭔가. 사람들 모이라고 만드는 게 광장 아닌가. 광장과 조례는 어울리지 않는다. 광장엔 조례가 필요 없다. 시민들의 출입에 통제가 필요하다면 광장이 아닌 것이다.

사실 이곳은 역사적으로도 광장이 되기엔 그다지 적절하지 않은 장소다. 이곳은 경복궁 앞이다. 왕궁 앞이다. 왕궁의 앞에서 백성들이 자유롭게 의사표시를 할 수 있었을까. 관청이 들어선 육조거리를 통행하는 백성들의 마음 상태는 어땠을까. 광화문 앞은 오늘날 의미의 광장이라기보다는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공간이었을 것이다. 광화문은 그런 역사를 갖고 있다. 그 역사가 오늘날까지 이어져 현재 광화문 일대는 정부청사 및 주한미대사관 등 국내외 관공서가 자리 잡고 있으며 이때문에 집회시위 금지 등 여러 제한을 두고 있다.

정부가 광화문광장을 만들면서 이름에 걸맞게 이곳을 왕조시대의 권위적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시민사회의 상징으로 바꾸고자 했다면 그 취지는 동감하고 쌍수 들고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이순신 동상과 광장 바닥에 새겨진 역사 기록들, 그리고 한글날 세워질 세종대왕상만 보더라도 이곳의 존재 목적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다. 정부는 아마도 도심정비 차원에서 시민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려고 했고, 장소가 민감하다보니 정부 비판 행사가 열릴 것을 우려해 분수를 설치하고 꽃밭을 깔고 조례까지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정부는 결정적 과오를 저지르고 말았다. 이곳에 '광장'이란 이름을 붙인 것이다. 정부도 알고 있다. 광장이라는 말에는 자유와 평등과 같은 원초적인 민주주의 가치가 내포돼 있는 것을. 실제로 정부는 작년처럼 언제라도 이곳에서 대규모 집회가 일어날 것 같으면 또 다시 명박산성을 칠 태세다. 위선이다. 시민들은 더 이상 명박산성을 보길 원하지 않는다.

실제로 광화문광장을 걸어보면 도대체 여기가 어떤 곳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도로 가운데 고립돼 있는 이곳은 딱히 쉴 곳이 없다. 그늘도, 벤치도 부족하다. 그렇다고 쭉 걸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본뒤 광장은 수많은 길이 모이는 곳이자 다시 수많은 길로 뻗어나가는 허브다. 그러나 광화문 광장도 아니고 공원도 아니고 그렇다고 길도 아니다. 마땅한 이름을 붙이기가 힘들 정도로 정체불명의 공간이다. 서울시는 이곳을 ‘광화문꽃밭’이라고 명명해야 했다. 꽃밭에서는 집회나 시위를 하는 사람은 없다. 꽃밭에 들어가지 않는 것은 태어나서 가장 먼저 배우는 질서다. 서울시가 원한 게 바로 그것 아니었는가. 조례 따위도 필요 없다. 그래도 굳이 조례를 유지하고 싶다면 ‘광화문꽃밭 조례’라고 이름을 바꾸든지.

광장의 가치는 이념과 계층에 관계없이 시민 모두에게 가장 평등하고 가장 자유로운 공간이다. 그래서 민주주의의 기본 중의 기본 가치다. 그걸 이 정부도 그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곳을 광화문광장이라 이름 붙였을 것이다. 광화문광장 개방에 반대여론이 높은 것은 괜히 이명박 딴지 걸기가 아니다. 시민들은 이 정부가 광장의 가치를 훼손하고 있는 마당에 또 다시 광장의 가치를 훼손하는 짓을 저지르고 있기 때문에 분노하는 것이다. 광화문광장을 광장이라 부르는 건 광장에 대한 모독일 수 있다. 광장이 아닌 곳을 광장이라 부르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면서 민주주의라고 하는 정부의 행동과 똑같다. 지금 이명박 정부가 드러내는 허위의식의 상징이 바로 광화문광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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