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플루(H1N1) 대유행이 슬픈 이유
1) 외국 한 번 나가보지 않은 사람도 신종플루에 감염될 수 있다.
즉, 남이 한 행위에 의해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이는 잘못의 원인과 결과가 어긋난다는 것이고, 우리가 ‘정의’라고 부르는 원칙에 어긋난다. 마치 이산화탄소를 거의 배출하지 않는 남태평양의 작은 섬이 지구온난화로 인해 수장될 처지에 놓여있고, 벵골 만 삼각주에 사는 전통방식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수천만의 사람들이 수재민이 되는 것과 같다. 비행기 한번 타 본적 없고, 외국 다녀왔다고 목에 힘 한 번 준 적 없는 사람들도 신종플루에 감염되고,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오히려 신종플루 유행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은 사람들이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신종플루 치료에 드는 치료비를 감안한다면, 서민과 저소득층이 이 바이러스로 인해 더 큰 피해를 입을 것이 자명해 보인다.
2) 신종플루 감염은 아무리 개개인이 노력한다고 해서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아무리 손을 잘 씻고, 술자리에서 잔 돌리기를 피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바이러스의 확산 양산이 이미 인간의 통제를 넘어선지 오래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말하듯 일본등 전세계에서 신종플루 치료제로 알려진 타미플루에 내성을 지닌 신종플루 바이러스가 더욱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 우리 정부 당국에서 말하듯 신종플루 감염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 변형되어 어떤 위력을 갖게 될지, 지금으로써는 예측할 수 없다. 이제 막 출현한 이 바이러스는 한마디로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공’이고, 인류는 이 ‘공’을 언제 잡을 수 있게 될지 알 수 없다.
3)현대사회는 신종플루를 만들어낸 장본인에 대해 우리들이 비난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멕시코에서 공장식으로 대규모 축사를 운영하는 미국의 다국적기업이 신종플루를 발생하게 했을 것이라 멕시코 주민들이 증언하고 있으며, 정황상 멕시코에서 신종플루가 시작된 것이 강하게 의심된다. (다음 글 참고 http://blog.hani.co.kr/ky0295/20331)하지만 ‘명확한’ ‘과학적’ 증거가 없을 때 그것을 말할 수 없다. 얼마 전 영화배우 김민선 씨의 경우처럼 해당 기업이 거액의 손해배상소송을 청구하여 경제적 정신적으로 압박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미 FTA 체결을 적극 옹해했으면서도, 양돈 농가를 지극히 아끼는 척하는 조선, 중앙, 동아 등 보수언론에서는 돼지고기 소비가 줄어들 것을 우려하면서 이번 신종플루와 돼지와의 연관성을 의심하는 것을 공격할 것이다.
인간이 ‘효율성’, ‘채산성’만을 추구하며 만들어낸 현대식, 공장식, 대규모식 영농형태는 인간에게 고스란히 피해를 입히고 있다. 돼지의 생리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양돈시스템(다음 글 참고 http://blog.hani.co.kr/ky0295/20054)이 돼지를 병들게 할 수 있다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런데 그러한 돼지와 접촉하는 인간에게 해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함부로 말할 수 없다는 현실이 참 안타깝다.
4)신종플루에 대해 국민들이 여론이 모아질수록 이명박 정부의 무능과 부패, 반국민, 반서민, 반생태계적 정책추진과 행태에 대한 비판의 위력이 분산될 수 있다.
미디어악법 날치기 처리으로 인한 재벌과 족벌신문들의 방송장악 허용, ‘4대강 사업’으로 인한 환경파괴, 복지예산, 지방 사업예산 축소 등 굵직한 현안에 대한 반정부 민심이 북태평양 고기압과 함께 주어진 휴가철로 인해 ‘완화’되었듯, 이번 신종플루 유행에 따른 국가적 위기 상황으로 인해 국민들의 비판여론이 흩어질 위험이 있다. 이는 결국 정부와 여당이 반서민 반국민 정책을 강하게 추진하는데 상대적으로 좋은 여건을 마련할 것이다.
괴담처럼 들리겠지만 사실 이명박 정부와 여당이야말로 신종플루를 퍼트린 장본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무책임한 음모론을 퍼트리려는 것은 아니다. 잘 생각해 보면 타당한 주장이다. 신종플루가 인간과 자연을 고려하지 않은 급속한 산업화와 무리한 자본축적에서 비롯된 것이 사실이라면, 재벌과 그들의 이익에 복무하고. 재벌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국민의 여론 악화도 무릅쓰는 현 정부와 여당이 사실상 신종플루를 창궐하게 한 세력들의 일부라고 주장하는 것이 너무 큰 비약이라고 탓할 수만 있을까. 하지만 이러한 논리 전개는 일반적인 것은 아니다. 재벌과 재벌을 낳게 한 자본축적이라는 현대사회의 체제와 신종 전염병의 창궐 간의 연관관계에 대해 연구하는 학자들에 대해 지원할 정부가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추측은 추측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5) 현 정부가 신종플루 확산을 막기 위한, 또 신종플루 감염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한 ‘결정적인’ 조치를 취할 것 같지 않다.
외국인과 내국인들의 입출국을 어느 정도 통제하기에는 관광‘산업’이 문제고, 또 학생들의 영어실력과 글로벌경쟁력이 문제다. 외국인들이 신종플루에 감염되어있을 가능성이 우리 국민들에 비해 커도 그들의 입국과 내국인들의 출국을 통제한다면 국내 관광산업이 타격을 받을 것이다. 또 ‘아륀지’ 정부답게 원어민 교사들이 아무리 신종플루를 퍼트린 전과가 있다고 해도 학생들의 영어실력 향상을 위해 그들을 통제할 수는 없는 실정이다.
또 신종플루 예방백신으로 알려진 타미플루를 싼 값에 사들여 국민들에게 투여할 만큼 국가 재정 상태가 좋지 않다. 4대강 사업이, 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화급한 사안’이기 때문에 거기에 투자할 수 조원에 이르는 돈을 투입하다 보니 타미플루를 구입할 여력이 있을지 의문이다. 조세 공평성이 워낙 중대한 사안이라 부자들 감세해서 재정이 어려우니 아마 타미플루에 세금을 매겨서 팔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다.
하지만 타미플루는 세계보건기구(WHO)가 공언했듯, 신종플루를 완벽하게 커버할 수 있는 백신이 아니다. 이미 신종플루의 변형 양상은 타미플루의 영향력을 넘어섰다.
또 다른 문제는 어느 나라에서 신종플루에 대한 완벽한 백신을 개발한다고 하더라도 WTO 체제 하에서의 지적재산권이라는 높은 ‘벽’ 때문에 그 백신을 싼 값에 공급할 수 없을 것이다. 국내에서 개발되더라도,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내세우는 정부가 어떤 대책을 내세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 무엇보다 신종플루 유행이 슬픈 이유는 바로
6) 벗을, 이웃을, 사람을 의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치명적인 전염병을 옮길 수 있다는 공포심은 그렇지 않아도 소원한 현대사회의 인간관계를 더욱 멀게 만들 것이다. 누군가와 악수를 하는 것만으로 신종플루에 감염될 수 있다고 한다면 어찌 '그 가벼운 스킨십'이 더이상 호의의 표시일 수 있겠는가. 제자는 스승의 재채기에 민원을 제기해야 할 지 모른다.
인간이 개발한 지구 반대편을 여행할 수 있는 이동수단들이 지금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곁에 있는 친구의 손도 잡을 수 없는데.
결국) 답이 없다.
이 신종플루라는 인간이 만들어낸 재앙을 막을 방법이 없다. 다만 가만히 앉아 불행이 나를 피해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지금의 자본과 욕망이 지배하는 세상에 대해 반성하지 않고서는 지금의 전염병 확산 사태를 근본적으로 극복할 대안이 되기 어려울 것이다. 정의도, 인간의 노력도, 사회도, 과학도 근본대책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신종플루 대유행’과 사망자 발생이라는 비극이 더 안타깝게 슬프게 느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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