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대통령이 24일 서울 용산구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국가인권위 설립 5주년 기념식에서 격려사를 하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 2006.11.24
비서진에 하대하는 법 없어
소탈하고 정 많은 카리스마
완벽주의 성격의 논리적
“정치 안했다면 교육자 됐을 것”
소탈하고 정 많은 카리스마
완벽주의 성격의 논리적
“정치 안했다면 교육자 됐을 것”
김대중 전 대통령은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란 책에서 자기 자신에 대해, “정치를 하지 않았다면 아마 교육자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지식을 잘 정리해서 알아듣기 쉽게 전달하는 능력이 있다는 말을 아주 어렸을 때부터 들어왔고, 스스로 천성이 매우 논리적이라고 느낀다”는 것이다.
그의 논리적이고 현실적인 면모는 종종 다른 대통령들과 비교된다. 1980년대 중반 민주화추진협의회를 결성해 김영삼 전 대통령과 공동의장으로 활동할 때의 일화다. 민주화 서명작업의 목표를 놓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현실적’ 목표로 100만명을 제시했다. 그러자 김영삼 전 대통령은 “누가 숫자를 세어 보겠느냐”며 1000만명을 주장했다고 한다. 유종필 국회도서관장은 “김 전 대통령의 연설문에는 늘 ‘첫째, 둘째, 셋째’가 들어간다”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연역식이라면 김 전 대통령은 귀납식”이라고 말한다.
이런 면을 뒷받침하는 것은 완벽주의에 가까운 꼼꼼함과 신중함이다. 그가 항상 들고 다니는 수첩과 메모지에는 언제나 깨알 같은 글씨가 빈틈없이 빽빽이 적혀 있다. 60년대 민주당 대변인 시절 1분에 불과한 성명을 준비하는 데 다섯 시간을 쏟아부었다는 얘기도 있다. 그는 “나는 완벽주의자의 기질이 다소 있는데, 무슨 일을 하든 완전하게 해야 하기 때문에 치밀한 구상과 충분한 준비 없이 일을 해 본 적이 별로 없다”(<나의 삶 나의 길>)고 말했다.
아랫사람들을 다루는 방식도 독특하다. 그의 곁에는 “비서들은 있지만 참모는 없다”는 얘기가 많았다. 비서들은 제각각 일부만 알고, 전체는 김 전 대통령 혼자만 아는 식이다. 김 전 대통령이 워낙 철저하고 논리적으로 모든 것을 준비하기 때문에 밑에선 시키는 일만 하게 된다는 것이다.
베르너 페니히 독일 베를린자유대학 교수는 6·15 정상회담 5돌 기념 국제학술대회에서 “김 전 대통령은 상대방을 잘 배려하고 호감을 주며 풍부한 유머 감각을 가지고 있지만, 엄격한 면모를 갖췄다”며 “그가 최종적으로 발언을 하면 더 이상 토를 달 수 없다고 한다”고 말했다. 카리스마가 강하다는 얘기다.
신중하고 논리적인 그의 성격은 곧잘 지나치게 계산적이라든가, 의심이 많은 편이라는 부정적 평가로 이어지기도 한다. 김 전 대통령은 정치자금을 직접 관리했고, 당직자들한테 “술 마시라”며 돈을 줄 때도 다 보는 앞에서 지폐를 일일이 세어 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비서들한테도 하대를 하는 법이 거의 없었고, 특히 부지런한 사람을 매우 아꼈다고 한다. 한상진 서울대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성품이 “소탈하고 정이 많은 아버지 같은 사람”이라며, 그의 전라도 입담과 유머 감각에서 소탈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김 전 대통령은 사형선고를 받을 당시의 기억을 이렇게 털어놓곤 했다. “사실 죽는 것은 겁났다. 한참을 고민하다 바르게 살자고 결심했다. 큰소리는 쳤지만 사실은 살고 싶어 재판정에서 재판관 입만 뚫어지게 쳐다봤다. 무기징역만 받았으면 했다. ‘무’ 하면 입이 나오고 ‘사’ 하면 입이 찢어지게 보일 것 아닌가.” 인생 최악의 순간을 ‘남의 얘기’ 하듯 털어놓는 여유에, 주변에선 폭소가 터졌다. 그는 굉장한 대식가이고, 동물 비디오를 즐겨 봤다. <옥중서신>에선 가족들 말고도 집에서 기르던 개가 보고 싶다고 자주 썼다. 감옥과 영국에선 꽃을 즐겨 키웠다. 그 이유를 “꽃들의 정직성을 믿고 있고, 정성을 쏟으면 쏟은 만큼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해주는 정직성에 반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
김대중도서관 전시실에 보관돼 있는 김 전 대통령의 옥중 편지. 김 전 대통령이 내란음모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고 수감중이던 청주교도소에서 부인 이희호씨에게 보낸 것이다.<한겨레> 자료사진
김 전 대통령은 사형선고를 받을 당시의 기억을 이렇게 털어놓곤 했다. “사실 죽는 것은 겁났다. 한참을 고민하다 바르게 살자고 결심했다. 큰소리는 쳤지만 사실은 살고 싶어 재판정에서 재판관 입만 뚫어지게 쳐다봤다. 무기징역만 받았으면 했다. ‘무’ 하면 입이 나오고 ‘사’ 하면 입이 찢어지게 보일 것 아닌가.” 인생 최악의 순간을 ‘남의 얘기’ 하듯 털어놓는 여유에, 주변에선 폭소가 터졌다. 그는 굉장한 대식가이고, 동물 비디오를 즐겨 봤다. <옥중서신>에선 가족들 말고도 집에서 기르던 개가 보고 싶다고 자주 썼다. 감옥과 영국에선 꽃을 즐겨 키웠다. 그 이유를 “꽃들의 정직성을 믿고 있고, 정성을 쏟으면 쏟은 만큼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해주는 정직성에 반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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