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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소 가능? 누구도 예측 힘들어
연임 의도? 합리적 해결 방안
연임 의도? 합리적 해결 방안
지난해 8월20일 기소 뒤 1년 만에 정연주 전 한국방송 사장에게 무죄가 선고돼, 검찰은 ‘정치 검찰’ 논란의 수치스런 한페이지를 다시 완성하게 됐다. 법원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벌어진 무수한 정치적 수사 중에서도 두드러진 이 사건에서 무려 10가지 이유로 검찰의 주장을 모조리 배척했다.
정 전 사장은 2005년 7월 서울고법의 조정 권고를 받아들여 국세청과의 사이에 진행 중이던 소송 17건을 모두 취하했다. 5년 넘게 끌던 소송을 556억원을 돌려받는 조건으로 마무리한 것이다.
정권교체 뒤인 2008년 5월 감사원의 한국방송에 대한 특별감사와 함께, 고발장을 접수한 검찰의 수사가 시작됐다. 출석을 거부하던 정 전 사장을 체포해 조사한 검찰은 회사에 1892억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로 그를 기소했다. 검찰은 고발인의 주장을 받아들여, “상급심에서도 한국방송의 승소가 매우 유력한 상황이었으며, 최소한 1심 승소금액인 1764억원은 돌려받을 수 있었는데 연임을 위해 서둘러 조정을 받아들여 회사에 손해를 입혔다”고 밝혔다.
정 전 사장과 검찰 사이에 사실관계에 대한 다툼은 별로 없었지만, 검찰은 정 전 사장이 ‘불순한 의도’로 조정에 응했다며 정 전 사장에게 죄를 묻는 방향으로만 당시 상황을 해석했다. 당시 검찰 내부에 처벌이 어렵다는 시각도 있었지만, 머뭇거리던 검찰 수뇌부는 정권의 ‘윗선’으로부터 질책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은 “이 사건에서 법리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부분은 배임의 범의가 있었는지 여부뿐”이라면서 검찰의 논리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재판부는 대표적 기소 논리인 상급심에서의 승소 유지 가능성에 대해 “누구도 재판 확정 전에 그 결과를 확실히 예측할 수는 없다”며 “한국방송은 1심에서 16건 중 9건은 승소했지만 7건은 패소해 일방적으로 우세에 있었다고 보기 힘들다”고 밝혔다. 또 원·피고 한쪽에만 일방적으로 유리하지 않게 진행하는 법원의 조정에 응했다는 이유로 처벌에 나선 것은 조정제도의 기본 취지를 무시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정 수용에 대한 배임죄 적용은 이미 ‘사법부 독립성 침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검찰의 또다른 처벌 논리인 ‘연임 의도’도 “정 전 사장은 노조가 경영 문제에 대한 책임을 요구하기 전부터 소송의 합리적 해결 방안을 찾았다”는 이유로 인정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밖에 △정 전 사장이 독단적으로 조정에 응한 게 아니라 자문과 내부 검토를 거쳤고 △소송에서 이기더라도 국세청이 다시 세금을 부과할 수 있고 △공기업인 한국방송이 과세관청과 장기간 다투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는 등의 판단 배경도 열거했다.
검찰은 무죄 선고에 대해 “납득할 수 없다”며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 전 사장 쪽의 김기중 변호사는 “법원이 무리한 기소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을 해 (검찰이) 항소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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