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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나라가 어지러운데 어찌 먼저 가시나이까”

등록 2009-08-19 15:12

한승헌 변호사 추도사
죽을 고비 수도 없이 넘기며 민주·평화 이끈
당신은 우리 대통령을 넘어 세계의 지도자
업적 되새기며 나라·겨레 사랑 다짐합니다
김대중 대통령님께 제가 이런 애도의 글을 드리게 되오니, 아픈 마음 헤아릴 길이 없습니다. 이제 대통령님께서는 고난과 영광으로 점철된 이승의 삶을 거두시고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그토록 간절한 기도와 소원을 뒤로하시고 어떻게 눈을 감으셨습니까.

생각하건대 대통령님께서 남기신 발자취는 이 나라의 빛과 어둠, 그리고 이 겨레의 염원과 맞닿은 궤적이었습니다. 비단 남한의 대통령에 그치지 아니하고, 조국의 남과 북을 아우르는 지도자였고, 세계가 존경하는 지도자였습니다.

한반도 남쪽 바다 하의도에서 열린 대통령님의 삶은 해방 후의 혼돈과 좌우 대결 속에서 여러 번 위기를 맞고 상처를 입었습니다. 특히 정치인으로서 반독재 투쟁을 하는 과정에서 몇 번이나 죽음의 고비를 넘기셨습니다. 심지어는 국가기관인 중앙정보부 요원에게 일본에서 납치되어 살해당할 뻔했는가 하면, ‘내란 군인’들이 날조한 ‘5·17 내란음모사건’ 재판극에서 사형 선고까지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위해도 이 땅에서 독재정치를 끝장내고 민주주의를 쟁취하고자 하는 대통령님의 굳은 신념과 행동을 꺾지는 못했습니다. 나라와 겨레의 통일을 향한 위대한 결행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대통령님께서는 민주화 투쟁의 험난한 대장정을 이끌어 오신 끝에, 역사상 초유의 여야간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룩하는 위대한 성과를 남기셨으며, 험난한 한 시대를 감당하는 ‘준비된 대통령’으로서, 경륜과 정책의 실천을 통하여 나라를 크게 발전시키셨습니다.

널리 알려진 대로 대통령님께서는 당선자 시절부터 구제금융 사태(아이엠에프 위기)라는 국난의 타개를 위해 놀라운 역량을 발휘하셔서 예상 밖의 ‘조기 졸업’으로 경제를 살려내고 나라를 구해냈으며, 세계를 놀라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분단의 저편, 평양까지 몸소 날아가시어 해방 후 최초의 남북 영수회담을 열고, ‘6·15 남북 공동성명’을 이끌어냄으로써, 남과 북의 화해·협력·교류에 큰 기틀을 마련하셨습니다. 남북 대결을 지양하고 평화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대통령님의 경륜이야말로 이 땅의 안정과 번영에 이바지하는 근본적인 처방이었습니다.

대통령님께서 2000년도 노벨평화상을 받으신 것도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한 공헌을 세계가 인정한 증표였으며, 우리 한국인으로서도 ‘첫 수상’의 영광이자 자랑이었습니다.


대통령님께서는 ‘국민의 정부’ 5년 동안 민주주의와 인권은 물론이고 경제 발전, 생산적 복지의 추진, 지역차별 철폐, 국민통합 등 국정 여러 분야의 개혁에 큰 성과를 이루어내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퇴임 뒤에도 지도자로서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국내는 물론이고, 멀리 외국에까지도 대통령님의 발걸음과 목소리의 파장이 미쳤으며, 세계 평화와 남북관계, 특히 북의 핵문제 해결을 위한 합리적 방안을 제창하시어 많은 공감을 이끌어내셨습니다.

그런 일련의 과정에서, 연세에 비해 너무 벅차고 힘겨운 활동을 계속하신 것이 건강에도 영향을 끼쳤을 것 같아서 애석하기 그지없습니다.

지난번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불행한 최후에 큰 충격을 받으신데다, 현 이명박 정부의 반민주·반인권적 역주행과 남북관계 악화에 공개적 비판을 하실 정도로 상심이 겹쳐 있었던 것도 마음에 걸립니다.

대통령님께서는 무도한 권력의 정치적 탄압을 받은 피해자임에도 정치적 보복을 반대하셨고, 화해와 용서를 강조하고 또 몸소 실천하셨습니다. 1973년의 납치사건에 대해서 그러했고, 1980년의 ‘내란음모사건’에서 사형 구형을 받고도 정치적 보복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는 최후진술을 남기셨습니다.

대통령님만큼 많이 읽고, 깊이 생각하시며, 넓게 살피고, 멀리 내다보시는 지도자를 이제 어디서 또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라 걱정이 날로 늘어가는 이 국난의 복판에서 대통령님께서 저희 곁을 떠나 멀리 가셨으니, 참으로 애통하고 허탈합니다.

생전의 이런저린 입장의 차이를 떠나서 우리 모두가 대통령님의 빛나는 업적을 되새기고, 나라 사랑 겨레 사랑의 유지를 받들어 나갈 것을 다짐하면서, 삼가 추모의 묵념을 올리고자 합니다.

정작 드리고 싶은 말씀은 저만치 접어놓은 채, 원치 않는 작별의 인사를 드립니다.

삼가 명복을 비옵나이다.

변호사/전 감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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