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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주 전사장·미네르바·공기업 수사 줄줄이 완패
정치적 사건에 묻지마 기소…내부서도 비판 목소리
정치적 사건에 묻지마 기소…내부서도 비판 목소리
‘무죄 제조기.’
지난 18일 열린 정연주(63) 전 한국방송 사장의 1심 선고공판에서 무죄가 선고되자, 사정수사를 담당하는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 수사라인을 비꼬는 말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 이런 잇따른 무죄 판결은 법리적 시각 차이가 아니라 무리한 법적용이 원인으로 지적되는데도, “법원 판단을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만 되풀이하는 검찰에 대한 비판 여론이 고조되고 있다.
검찰은 지난해 정권교체 뒤 ‘공기업 비리를 척결한다’며 칼날을 벼렸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움직임에 대한 강경 진압 움직임에도 가세했다.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이 지난해 청구한 압수수색영장은 전년보다 2757건이 늘어 9765건에 이르고, 체포영장도 전년보다 2300여건이 증가한 1만여건에 이를 정도로 사정 바람이 몰아쳤다.
그러나 지난해 말부터 공기업 수사 결과에 대한 무죄 판결이 쏟아지기 시작하더니, 정치적 성격이 짙은 사정수사의 결과도 줄줄이 검찰이 완패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올해 들어서도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김현미 전 민주당 의원, 김평수 전 교직원공제회 이사장, 재미 사업가 조풍언씨 등이 전체 혐의나 주요 혐의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특히 정 전 사장 사건은 기소 배경으로 내세운 논리들 중 하나도 인정받지 못했다는 점에서 검찰이 큰 망신을 당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정 전 사장이 법원의 조정 권고를 받아들여 세금 소송을 끝냈는데도 법원에 기소한 것은 애초부터 무리한 시도였다는 것이다. 서울지역의 한 검사는 “이 사건은 수사 단계에서부터 무죄가 나올 것으로 내다보는 사람이 많았다”고 말했다.
검찰 안팎에서는 이처럼 애초 무리한 기소였기 때문에 무죄가 속출한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거물급을 염두에 두고 수사하다 성과가 안 나오자 ‘먼지털기’, ‘가지 치기’ 수사로 이어졌고, ‘본전’을 뽑기 위해 미약한 조사 결과로 공소장을 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기소 자체를 성과로 보는 태도도 작용을 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부장검사는 “수사를 하다 ‘얘기’가 안 되면 털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것은 ‘위쪽’ 눈치를 보기 때문 아니겠느냐”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검찰은 수사 배경과 과정, 법 적용의 문제점을 돌아보기보다 법원에 책임을 떠넘기는 태도를 버리지 않고 있다. 검찰은 이번에도 “납득할 수 없어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묻지마 기소’가 ‘묻지마 상소’로 이어지는 셈이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정 전 사장에게 무죄가 선고된 뒤 논평을 내 “검찰은 집권세력의 의도에 따라 검찰권을 남용하고 정치적 중립성을 상실한 점을 반성해야 한다”며, 수사 책임자들에게 불이익을 가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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