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아무개(43)씨는 지난 18일 광주의 한 대형마트에서 “김대중이 죽었다. 좋은 사람은 다 떠나는구나”라고 푸념했다. 우연히 이 말을 들은 ㄴ아무개(39)씨는 이를 듣다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니 친구냐. 왜 함부로 말하느냐”며 ㄱ씨의 뺨을 때린 뒤 서로 치고 받았다.
시대별로 다양하게 불렸던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호칭엔 한국의 정치·사회사가 압축돼 있다.
김 전 대통령의 측근 정치인인 ‘동교동계’ 인사들은 과거 ‘총재님’보다 ‘선생님’을 더 많이 사용했다. 50대 이상의 호남인들 중에도 김 전 대통령을 ‘선생님’으로 불렀던 이들이 적지 않다. 고2 때 김 전 대통령을 만난 것을 계기로 야당에 투신해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목포시의원 정석봉(70)씨는 “선생님이란 표현에는 독재에 맞서 싸우는 지도자에 대한 존경의 의미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언론보도가 통제되던 80년대 가택연금중이던 김 전 대통령을 암시하는 호칭은 ‘한 재야인사’였다. 일부 측근 정치인들은 김 전 대통령을 ‘민족지도자’로 일컫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의 호칭을 둘러싸고 멱살잡이를 한 이야기가 종종 신문 가십란에 실렸다. 측근들은 지금도 김 전 대통령을 ‘어른’이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조정관 전남대(정치학) 교수는 “호남 사람들은 독재정권과 투쟁해 대통령이 된 김 전 대통령에 대해 호남의 자존심을 살려준 자랑스런 정치지도자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의 영문 이름 첫글자를 딴 ‘디제이’도 애칭 중의 하나다. 디제이라는 호칭은 김영삼 전 대통령을 지칭하는 ‘와이에스’와 함께 한국 정치사에서 ‘양김 시대’를 떠올리게 한다. 97년 12월 대선에서 당선된 김 전 대통령은 ‘각하’라는 호칭을 ‘대통령님’으로 근대화했다. ‘김대중 대통령님’이라는 호칭엔 우리나라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라는 정치적 의의가 함축돼 있다.
하지만 비호남인들 중엔 김 전 대통령을 선생님으로 부르는 것을 거부감을 느끼는 이도 많았다. 심지어 일부는 김 전 대통령을 ‘김대중씨’나 ‘김대중’으로 부르기도 했다. 또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지역감정의 골을 더 악화시킬 소재가 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 전 대통령에게 호의적이었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가끔 집회 등에서 정치인들이 그분을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로 추켜세울 때면 오히려 거부감을 느끼곤 한다”고 말했을 정도다.광주/정대하 박영률 기자 daeha@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