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공개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친필 일기장. 김대중 전 대통령 추모 공식누리집
현정부에 따끔한 ‘유언’…“정부, 강압 일변도땐 큰 변 면치못해”
김대중 전 대통령이 생애 마지막 해 입원 직전까지 쓴 일기가 21일 일부 공개됐다. 건강이 악화된 상태에서 병원에 입원하기 직전인 6월4일까지 육필로 쓴 일기라는 점에서 사실상 대국민 유언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기엔 이명박 정부의 일방주의적 행태에 대한 분노와 경고, 그리고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와 남북관계에 대한 우려와 안타까움이 절절히 담겨 있다. 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예감한 듯 인생의 아름다움에 대한 예찬과 부인 이희호씨에 대한 애틋함이 들어 있다.
김 전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5월23일 “검찰이 너무도 가혹하게 수사했다. 노 대통령, 부인, 아들, 형, 조카사위 등 마치 소탕작전 하듯 공격을 했다”고 분노하며 “결국 노 대통령의 자살은 강요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적었다. 특히 노 전 대통령 영결식에 참석한 뒤 작성한 5월29일치 일기에서는 “이번처럼 거국적인 애도는 일찍이 그 예가 없을 것이다. 국민의 현실에 대한 실망, 분노, 슬픔이 노 대통령의 그것과 겹친 것 같다”며 “앞으로도 정부가 강압일변도로 나갔다가는 큰 변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강력히 경고했다.
앞서 용산참사가 발생한 1월20일치에서는 “경찰의 난폭한 진압으로 5인이 죽고 10여 인이 부상 입원했다. 참으로 야만적인 처사다”라고 경찰의 강경진압을 비판했다.
1월16일 일기에서는 “역사상 모든 독재자들은 자기만은 잘 대비해서 전철을 밟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결국 전철을 밟거나 역사의 가혹한 심판을 받는다”고 적었다.
김 전 대통령은 파란만장한 85년 인생을 회고하며,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와 남북관계의 정상화를 위해 남은 생을 바치겠다는 의지를 일기장 곳곳에 적었다. 1월14일과 15일치에선 “인생은 얼마만큼 오래 살았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고통받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위해 살았느냐가 문제”라며 “수없는 박해 속에서도 역사와 국민을 믿고 살아왔다. 앞으로도 생이 있는 한 한길을 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투병의 고통 속에서도 생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보이기도 했다. 그는 4시간의 투석치료를 받은 4월27일 “이 세상에서 바랄 것이 무엇 있는가”라며 “끝까지 건강 유지하여 지금의 3대 위기-민주주의 위기, 중소서민 경제위기, 남북문제 위기 해결을 위해 필요한 조언과 노력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또 “아내를 사랑하고 존경한다. 아내 없이는 지금 내가 있기 어려웠지만, 현재도 살기 힘들 것 같다”(1월11일), “하루 종일 아내와 있는 것이 기쁘다”(2월7일)며 평생을 함께해온 부인 이희호씨에 대한 애정을 담았다.
이날 공개된 일기는 김 전 대통령이 남긴 2008년, 2009년 두 해치 가운데, 올해치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의 최경환 비서관은 미공개 일기와 관련해 “국장을 치르고 있는 시점에서 공개하기 어려운 부분의 공개 여부는 이희호 여사께서 결정하실 것”이라고 말해, 애초 일기에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더욱 강한 비판이 담겨 있음을 내비쳤다. 이날 공개된 일기는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는 제목의 소책자 3만부로 제작돼 전국 곳곳의 분향소에 배포됐다.
신승근 송호진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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