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광장을 찾은 것은 한여름 낮의 뜨거운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밤 열시였다. 광화문 네거리에서 광화문 광장으로 가며 첫눈에 보이는 것은 이순신 동상과 함께 단연 돋보이는 아름다운 분수였다. 연인들은 분수를 바라보며 주변을 거닐었고 아이들은 신나게 도심 속 물장구를 즐겼다. 그냥 분수가 아닌 색색의 LED조명이 들어간 화려한 분수에서 말이다.
그동안 접근할 수 없었던 이순신 동상의 뒤편으로 가면 역시나 아름다운 분수와 함께 서울의 중심부의 야경이 올려다 보인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삼성광고, 감리교 본부, 교보문고 등 현 한국을 주름잡는 유수의 언론, 기업들의 간판들이 모여서 과연 서울의 중심부라는 것을 실감케 한다.
물줄기는 10시까지 나오며 20분 간격으로 나온다고 했는데 워낙 시민들이 많아서인지 10시가 넘어서도 간헐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전혀 예고가 없이 아래에서 강한 수압으로 올라오기 때문에 자칫 카메라가 물에 젖을 뻔 했다. 물에 젖기를 원치 않거나 전자기기 등을 소지한 사람들은 아래에서 예고 없이 나오는 물줄기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이순신 동상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데 옆에서 일본어가 들려왔다. 그들도 관광차 서울을 왔고 야경을 즐기러 나온 것이리라. 문득 그들이 저 동상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저 앞에 당당하게 서있는 동상의 주인공이 바로 일본의 해군을 거의 전멸시키다시피 한 전쟁영웅이란 것을 알면 그들이 그렇게 즐거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침략한 것은 일본이었고 우리나라를 지킨 영웅이 맞다해도 굳이 광화문 광장에 이순신 장군이 있어야 할까하는 의문이 든다. 최근 한국에는 수많은 일본인이 찾고 있어 명동이나 남대문시장을 가면 여기가 일본인지 한국인지 헷갈릴 정도이다. 그 관광객들이 서울 시내를 둘러보며 아울러 광화문 광장도 많이 찾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이순신 동상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하다. 비록 그가 우리의 자랑이라 할지라도 상대의 기분을 고려하는 배려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전범이고 침략자들이라는 면에서 다르지만 그들이 이토 히로부미를 지폐에 넣고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면 우리도 기분이 나쁘지 않은가? ‘세종로’라는 도로에 세종대왕의 동상이 들어서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한 광장에 두개의 동상이 서있는 광경은 가뜩이나 좁은 광장을 어지럽힐 뿐이다. 충무공의 동상이 ‘충무로’로 가 제자리를 찾길 바란다.
광화문역에서 이어지는 통로가 있는 광장 중앙으로 나가니까 때 아닌 공사가 펼쳐지고 있었다. 앞서 이순신 장군의 동상 뒤편에서도 사실 사람이 누울 만큼 큰 유리판을 갈아 끼우는 작업이 한참이었는데 까딱 잘못해서 놓치거나 흥건한 물에 미끄러져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사람이 크게 다칠 수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접근 제한이나 안전조치 없이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피해가며 작업을 하고 계셨다. 그 외에도 위 사진에서 보듯이 광장 곳곳에서 톱으로 자르고 부수고 여러가지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큰 소음은 둘째치고서라도 너무 위험해 보였다. 밤 열한시가 늦은 시간이긴 하지만 아직 많은 시민들이 오가는 곳에서 보호 펜스나 안전장치 없이 공사판을 펼치고 있었다. 올 한해 명동, 광화문, 한강변 등이 다 공사로 몸살을 앓았다. 또한 현재 정부는 4대강 사업과 같은 대형 토목공사를 계획하고 있다. 그러한 개발중심의 작업은 한밤중 광화문 광장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오히려 이 장면이 낯설지 않아 착잡했다.
세종대왕을 만들고 있는 공간 뒤편에는 플라워카펫이 펼쳐져 있었는데 그 앞에서 진기한 풍경이 펼쳐졌다. 하긴 2009년 서울에서 그렇게 낯선 풍경은 아니지만 그래도 문화와 여가 목적으로 조성했다는 광화문 광장에서는 부적절하게 보이는 풍경이었다. 광장을 순찰하는 몇몇 경찰 외에도 적어도 3개 부대(한 부대에 20~30명 추정)정도의 경찰들이 보였다. 한 부대는 어딘가로 급하게 이동 중이었고 한 부대는 건너편 인도를 통해서 빠른 속도로 지나갔고 또 한 부대는 광화문광장에서 훈련을 하고 있었다. 한부대가 사각형으로 정렬했다가 방패를 들고 뭉쳐서 밀집된 형태로 모였다가 ‘일보전진, 이보전진’을 외치며 거대한 인간 한 뭉치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앞에서는 높은 사람으로 보이는 경찰들이 종이에다 무언가를 체크하며 이것저것 지시하고 있었다. 아마도 집회 시위에 대응하는 훈련을 하는 듯한데 마치 로마시대의 밀집보병의 훈련장면을 보는 듯한 모습이었다(직접 본적은 없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지나가는 시민들이 이를 굉장히 의아하게 쳐다보며 지나가지만 경찰들은 한 치의 의식도 하지 않고 연습에 집중할 뿐이었다. 아무리 밤이라고는 하지만 서울의 한복판, 시민을 위한 여가공간에서 경찰 전투 훈련을 해도 되는 것인가? 보수 언론과 굴지의 대기업들의 간판에 둘러싸인 사막의 오아시스. 화려하고 비싼 분수대와 그 분수를 바라보며 탄성을 내는 시민들과 어린이, 위험천만한 위치에 따른 교통사고의 위험과 더불어 시끄럽고 위험한 공사판, 그리고 그러한 공사를 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지나치게 짧은 공사기간과 조급했던 개장, 또한 시민들의 눈길을 아랑곳하지 않는 경찰들의 몸싸움 훈련, 인위적으로 구성되어 아름다움조차 느껴지지 않는 플라워 카펫, 광화문 광장이지만 정작 광화문을 가기 위해서는 횡단보도를 건너고 한참 걸어갔다가 다시 횡단보도를 건너 한참을 걸어와야 하는 광화문 광장. 대한민국의 상징적 공간은 정말로 현대 대한민국의 축소판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물줄기는 10시까지 나오며 20분 간격으로 나온다고 했는데 워낙 시민들이 많아서인지 10시가 넘어서도 간헐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전혀 예고가 없이 아래에서 강한 수압으로 올라오기 때문에 자칫 카메라가 물에 젖을 뻔 했다. 물에 젖기를 원치 않거나 전자기기 등을 소지한 사람들은 아래에서 예고 없이 나오는 물줄기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한겨레 블로그 내가 만드는 미디어 세상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