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전 10시 서울 마포구 대흥동 양원주부학교에서 열린 졸업식에서 1년간의 수업을 마친 늦깎이 ‘아줌마 학생’ 243명이 졸업장을 받으며 서로 축하를 해주고 있다.
양원주부학교 ‘사연 많은’ 졸업식
“단어장을 만들어서 학교에 오고가는 시간에 지하철 안에서 외웠어요. 수업 끝나면 친구들이랑 스터디 모임을 만들어 같이 공부도 했구요.”
예순일곱살의 중학생 배영자(67)씨는 졸업장을 손에 들고 눈시울을 붉혔다. 배씨는 이번에 중학교 졸업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지난해 9월 양원주부학교에 등록한 뒤 일주일에 세 번 금천구 독산동에서 마포구 대흥동 학교까지 오가며 영어단어를 외웠다. 그리고 지난 5월 검정고시 합격 소식을 들었다. “검정고시 졸업장이 이렇게 좋은 줄 몰랐네요. 공부하는 게 이렇게 즐거운지도요.”
졸업장 북에 두고와…중퇴 학력 부끄러워
지하철서 단어장, 동창생과 스터디 ‘결실’ 24일 오전 10시. 양원주부학교 강당에는 배씨와 같은 늦깎이 초·중·고교생 243명이 모였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이들은 모두 ‘아줌마’다. 저마다 사연도 복잡했다. 황해도 장현군이 고향인 김선애(75)씨는 1950년 1·4후퇴 때 초등학교·중학교 졸업장을 모두 북한에 두고 피난내려왔다. “자식들 다 결혼시키고, 남편도 10년 전에 하늘로 먼저 보내고 나니 외롭더라구요. 그래서 늦었지만 다시 시작했어요.” 김씨는 이번에 초등학교 졸업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그는 공부하면서 젊어지고 건강해지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쉬는 시간에 짝이랑 이야기하고, 책을 보고 공부하니 ‘동심’으로 돌아간 것 같아요.” 한 여대 앞에서 옷 수선만 30년 넘게 한 ‘수선의 명장’ 공정순(66)씨는 유독 상을 많이 받았다. “교내에서 하는 팝송경연대회에서도 장려상을 받구요, 마포구에서 하는 글짓기대회에서도 상받았어요. 상 받는 게 이렇게 좋은 줄 몰랐네요.” 상장을 든 66살 공씨의 표정이 열여섯살 소녀마냥 해맑다. 그는 “초등학교 4학년까지밖에 못 마쳤어요. 언제나, 어디 학력을 적을 때 ‘초등학교 졸업’ 이라고 적는 게 부끄러웠는데 이제 한을 풀었다”고 말했다. 게다가 ‘동창생’도 여럿 생겼다. “3학년 1반 12명이 동창회를 만들었어요. 두 달에 한 번씩 꼭꼭 모이기로 했어요. 주변에서 중학교 동창회 한다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는데 이제 저도 동창회를 할 수 있게 됐네요.” 양원주부학교는 80년대 초반부터 미처 공부하지 못한 주부들을 대상으로 초·중·고교 과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전쟁고아, 극빈아동 등 정규 중학교 과정에 진학할 수 없는 청소년 교육을 목적으로 53년 문을 연 일성고등공민학교가 그 전신이다. 지금까지 약 4만5천여명의 주부 졸업생을 배출했다. 장진숙 양원주부학교 지도부장은 “멀리 경기도 양주에서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하루 4시간씩 통학을 하는 분도 계시다”며 “졸업장에 대한 평생의 한, 또 뒤늦게 새로운 삶을 시작하겠다는 어머님들의 열정이 굉장히 강하다”고 말했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지하철서 단어장, 동창생과 스터디 ‘결실’ 24일 오전 10시. 양원주부학교 강당에는 배씨와 같은 늦깎이 초·중·고교생 243명이 모였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이들은 모두 ‘아줌마’다. 저마다 사연도 복잡했다. 황해도 장현군이 고향인 김선애(75)씨는 1950년 1·4후퇴 때 초등학교·중학교 졸업장을 모두 북한에 두고 피난내려왔다. “자식들 다 결혼시키고, 남편도 10년 전에 하늘로 먼저 보내고 나니 외롭더라구요. 그래서 늦었지만 다시 시작했어요.” 김씨는 이번에 초등학교 졸업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그는 공부하면서 젊어지고 건강해지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쉬는 시간에 짝이랑 이야기하고, 책을 보고 공부하니 ‘동심’으로 돌아간 것 같아요.” 한 여대 앞에서 옷 수선만 30년 넘게 한 ‘수선의 명장’ 공정순(66)씨는 유독 상을 많이 받았다. “교내에서 하는 팝송경연대회에서도 장려상을 받구요, 마포구에서 하는 글짓기대회에서도 상받았어요. 상 받는 게 이렇게 좋은 줄 몰랐네요.” 상장을 든 66살 공씨의 표정이 열여섯살 소녀마냥 해맑다. 그는 “초등학교 4학년까지밖에 못 마쳤어요. 언제나, 어디 학력을 적을 때 ‘초등학교 졸업’ 이라고 적는 게 부끄러웠는데 이제 한을 풀었다”고 말했다. 게다가 ‘동창생’도 여럿 생겼다. “3학년 1반 12명이 동창회를 만들었어요. 두 달에 한 번씩 꼭꼭 모이기로 했어요. 주변에서 중학교 동창회 한다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는데 이제 저도 동창회를 할 수 있게 됐네요.” 양원주부학교는 80년대 초반부터 미처 공부하지 못한 주부들을 대상으로 초·중·고교 과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전쟁고아, 극빈아동 등 정규 중학교 과정에 진학할 수 없는 청소년 교육을 목적으로 53년 문을 연 일성고등공민학교가 그 전신이다. 지금까지 약 4만5천여명의 주부 졸업생을 배출했다. 장진숙 양원주부학교 지도부장은 “멀리 경기도 양주에서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하루 4시간씩 통학을 하는 분도 계시다”며 “졸업장에 대한 평생의 한, 또 뒤늦게 새로운 삶을 시작하겠다는 어머님들의 열정이 굉장히 강하다”고 말했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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