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지원 증거기록 요청에 이 전회장 용인 범위내 공개
1만6천쪽중 ‘48쪽’만 건네…법원 내부조차 “이례적”
1만6천쪽중 ‘48쪽’만 건네…법원 내부조차 “이례적”
이건희(67) 전 삼성그룹 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서울고법 재판부가 이 전 회장이 피소된 다른 사건 재판부의 기록 송부 요구에 대해 극히 일부 기록만 제공했다. 유독 이 전 회장 사건은 예외로 다루는 법원의 ‘관행’이 되풀이된 것이다.
특히 서울고법은 이 전 회장 쪽이 ‘공개해도 괜찮다’고 의견서에서 밝힌 범위 안에서 기록 제공을 결정해 법원 내부에서 의아하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서울고법 형사4부(재판장 김창석)는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발행 사건 기록을 달라는 대구지법 김천지원의 요청에 일부 문서만 공개하기로 결정하고 26일 이를 김천지원에 보냈다. 김천지원은 ‘이 전 회장 등이 1996년 제일모직의 에버랜드 전환사채 인수를 포기하게 해 회사에 394억원의 손해를 끼쳤다’며 제일모직 소액주주들이 2006년 낸 손해배상 소송 심리에 형사사건 기록이 필요하다며 지난 6월 문서 송부를 요청한 바 있다.
그러나 서울고법 재판부는 관련 사건 재판부에 기록 전부나 대부분을 넘기는 관례와 달리 48쪽만 제공했다. 증거기록만 1만6천쪽에 이르는 것에 비춰 극히 일부다. 핵심 인사들의 수사·공판 진술기록도 제외했다. 이 재판부는 지난 14일 이 전 회장이 삼성에스디에스(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헐값발행 과정에서 배임행위를 했다고 인정하고도 이 부분에 무죄를 선고했던 1심과 같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한 바 있다.
법원 내부에서는 이런 문서 송부 방식이 이례적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민형사 사건이 함께 제기된 사안에서 재판부끼리의 자료 제공은 일상이기 때문이다. 한 판사는 “(원고의) 사건 연관성 주장이 타당하다고 보기 때문에 한 재판부가 다른 재판부에 문서 송부를 요청하는 것”이라며 “(개인정보 보호가 문제라면) 신상정보는 가리고 공개하는 방식 등이 있기 때문에 대개 기록을 보낸다”고 말했다. 다른 판사는 “피고인 쪽 의견에 따라 일부만 공개하는 것은 거의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해당 재판부는 “관련 법령을 면밀히 검토해 적절하다고 판단한 범위 안에서 제공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허태학(65)·박노빈(63) 전 에버랜드 사장의 파기환송심을 맡은 같은 법원 형사9부(재판장 임시규)는 선고를 하루 앞둔 이날까지도 김천지원의 문서 송부 요청에 응하지 않고 있다. 선고가 이뤄지면 기록은 검찰로 넘어간다. 이 재판부는 “기록을 살펴보는 중이라 송부 여부에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이 전 회장의 기록을 갖고 있던 대법원도 문서 송부를 거부해, 배경이 의문스럽다는 지적을 받았다.
상급 법원들의 비협조로, 김천지원의 손해배상 소송 심리 진행은 멈춰 있다. 김천지원의 한 판사는 “기록이 오지 않으면 재판이 계속 미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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