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맨왼쪽)와 ‘역사를 여는 사람들 ㄱ’이 28일 오전 서울 남산의 옛 중앙정보부 5국(대공수사 분야) 건물로 통하는 터널 앞에 서서 남산역사신탁 사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국내 첫 ‘역사신탁 운동’
남산 옛 중정 건물 보존
조선통감 저택 복원키로
남산 옛 중정 건물 보존
조선통감 저택 복원키로
“이곳은 학원 사찰·수사를 담당한 ‘6국’입니다. 중앙정보부(중정)는 각 국을 숫자로 표시했는데, 밖에선 사람을 매달아 두고 고문한다고 해서 ‘고기 육’ 자라고 부르기도 했죠.”
28일 오전 시민단체 ‘역사를 여는 사람들 ㄱ’ 발기인으로 참여한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교양학부), 서해성 소설가, 안상운 변호사 등 10명이 서울시 중구 예장동 서울특별시 균형발전본부 건물 앞에 섰다. 1970년대 중정 6국이 있던 이곳은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으로 사형당한 도예종씨 등 8명이 고문받았던 곳이다.
이 건물 근처에는 1910년 이완용 내각 총리대신과 데라우치 마사타케 조선통감이 한일합병조약을 맺은 조선통감 관저 터도 있다. 국권을 완전히 잃은 역사적 장소임에도 표지판 하나 없었다. 서해성 소설가는 “그나마 근처에 큰 나무 두 그루가 있어 여기가 관저 터란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발기인으로 참여한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안기부장 언론특보 시절 이곳을 매일 다녔음에도 바로 옆에 통감 관저 터가 있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듣고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처럼 남산 일대는 ‘경술국치 100년과 중정 50년’이라는 근·현대사의 주무대였으나, 조만간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서울시가 ‘남산 르네상스 계획’에 따라 2015년까지 건물을 모두 철거하고 녹지로 만들기로 했기 때문이다.
‘역사를 여는 사람들 ㄱ’ 참여자들은 이와 같은 ‘부끄러운 역사’를 지우지 말고 보존하자는 뜻에서 모였다. 이들은 이날 발기인 대회를 열고, 앞으로 시민들의 성금을 모아 남산 일대 통감 관저 터와 옛 중정 건물을 사서 보존·복원하기 위한 ‘남산역사신탁’ 사업을 벌일 예정이다.
이날 현지 답사는 서울 유스호스텔로 이어졌다. 이곳은 1972년부터 중정부장 집무실과 지하 취조실을 갖추고 중정 본관으로 쓰였다. 유스호스텔 맞은편 서울 종합방재센터 건물 지하에도 중정 취조실이 있었다. 한홍구 교수는 “이곳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 아들 홍일씨가 고문을 받았다”고 말했다.
일행은 간첩 사건을 담당한 중정 ‘5국’이 있던 시청 남산별관으로 발길을 돌렸다. 5국으로 가기 위해 지나야 하는 20여m의 터널은 생과 사의 갈림길이었다. 간첩 혐의로 이 터널을 지나면 무죄로 풀려나는 일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송씨 일가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이곳에서 고문을 받기도 했다.
서울시 계획대로라면 통감 관저 터는 한일합병조약 100년(2010) 만에, 중정 건물은 50년(2011년) 만에 영영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 서해성 소설가는 “우리 근·현대사를 가장 크게 규정했던 국권침탈과 군사독재의 상징적 유적을 서울시가 모두 없애려 한다”며 “다음달로 예정된 중정 6국 건물(균형발전본부) 철거 방침부터 당장 보류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홍구 교수는 “부끄러운 과거도 우리 역사고, 지울 수 없는 부분이므로 보존해야 한다”며 “시민들의 힘을 모아 이곳에 ‘아시아인권·평화센터’를 만들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서울시 계획대로라면 통감 관저 터는 한일합병조약 100년(2010) 만에, 중정 건물은 50년(2011년) 만에 영영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 서해성 소설가는 “우리 근·현대사를 가장 크게 규정했던 국권침탈과 군사독재의 상징적 유적을 서울시가 모두 없애려 한다”며 “다음달로 예정된 중정 6국 건물(균형발전본부) 철거 방침부터 당장 보류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홍구 교수는 “부끄러운 과거도 우리 역사고, 지울 수 없는 부분이므로 보존해야 한다”며 “시민들의 힘을 모아 이곳에 ‘아시아인권·평화센터’를 만들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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