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억류됐다 30일 만에 풀려난 오징어 채낚이 어선 ‘800 연안호’의 박광선 선장(맨 오른쪽)과 선원들이 29일 저녁 속초항에 입항해 환영객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연안호는 7월30일 동해상에서 조업 중 북방한계선(NLL)을 넘어갔다가 북한 경비정에 예인됐다. 속초/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북핵제재 기류속 ‘선 제의’ 부담
북 먼저 ‘경협재개’ 입열지 주목
북 먼저 ‘경협재개’ 입열지 주목
지난달 30일 동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었다가 북한 경비정에 예인됐던 ‘800 연안호’(연안호) 선원과 선박이 나포 30일 만인 29일 남쪽으로 돌아왔다. 정부 합동조사단은 30일 “검사 결과 선원들의 건강과 선박 등은 별다른 이상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며 “연안호 선원들은 조사를 거쳐 31일 오후 쯤 귀가 조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연안호 선원 4명과 선박은 29일 오후 5시께 강원도 고성군 제진 동북쪽 약 29㎞ 지점(북위 38도 37분, 동경 128도 44분) 북방한계선을 넘어 남쪽으로 인도됐다. 북쪽 경비정은 북방한계선 북방 1.8㎞ 지점에서 연안호 귀환을 지켜봤고, 남쪽 해경 경비정은 북방한계선 이남 0.9㎞ 지점에서 연안호를 맞았다. 연안호는 남쪽 경비정의 호위를 받으며 이날 저녁 8시께 속초항에 입항했다.
연안호 선원들은 속초항 도착 직후 양양 해군기지로 옮겨져 북방한계선을 넘어가게 된 경위와 북쪽에서 지낸 한달 동안의 상황 등에 대해 해경 등 관계기관 합동조사단의 조사를 받았다. 가족들은 속초항에서 기다리다 양양 해군기지로 가서 3분여 동안 짧은 가족상봉을 했다. 박광선(54) 연안호 선장의 부인 이아나(49)씨는 30일 “면회시간이 너무 짧아 아무 것도 물어볼 수 없었다”며 “남편이 ‘잘 있다 왔으니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라’고 했다”고 전했다.
현대아산 직원 유성진씨 석방과 2년 만의 이산가족 상봉 합의에 이은 연안호 귀환으로 남북관계를 가로막던 인도주의적 현안들이 속속 풀리고 있다. 하지만, 이런 장애물의 제거가 본격적인 남북관계 진전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남쪽 당국은 금강산 관광 등 남북 경협 사업 재개를 위해선 현대그룹과 북쪽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사이의 합의를 넘어 당국간 협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현재로선 이를 위한 당국 협의를 먼저 북쪽에 제의하긴 어렵다고 선을 긋고 있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북핵 문제 진전이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한 국제제재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북쪽에 달러가 들어가는 방식의 남북관계 개선에 우리가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긴 어렵다는 판단”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북쪽이 이번에도 남쪽에 먼저 손을 내밀지도 불투명하다. 정부의 다른 당국자는 “북쪽이 먼저 협의하자고 제안해 올 경우 관광객 피격사망 사건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등 남쪽의 요구에 호응하는 것으로 볼 여지가 있는 만큼 대화는 이뤄질 것”이라며 “하지만 금강산 관광 등 경협 진전은 궁극적으로는 핵문제라는 국제 변수에 달렸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북쪽이 남쪽의 이런 태도를 감내하고 먼저 협의를 제안해 올지는 현재로선 가늠하기 어렵다. 북쪽이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선 금강산 관광이 재개돼야 한다는 점을 명분삼아 대화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있지만, 관광 재개 없이는 추석 상봉 실현이 어렵다며 상봉을 조건삼아 남쪽의 양보를 압박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손원제 기자, 속초·양양/차한필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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