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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내가 겪은 6·25 ‘전쟁과 인간’

등록 2009-09-01 16:38

<b>수냉식 중기관총</b> 6.25전쟁 당시까지 사용하던 수냉식 기관총은 열을 받지 않고 그 위력이 뛰어나지만 너무나 무겁기 때문에 산악이 많은 한국 지형에서는 적합하지 않았다. 따라서 점점 사라져 버렸다. 이 사진은 당시의 동료 중대원(화기소대)들의 모습인데 어쩌다 보관하게 되었다.
수냉식 중기관총 6.25전쟁 당시까지 사용하던 수냉식 기관총은 열을 받지 않고 그 위력이 뛰어나지만 너무나 무겁기 때문에 산악이 많은 한국 지형에서는 적합하지 않았다. 따라서 점점 사라져 버렸다. 이 사진은 당시의 동료 중대원(화기소대)들의 모습인데 어쩌다 보관하게 되었다.
전쟁 시는 휴가, 제대가 있을 수 없다. 제대보다는 보충이 더 시급한 것이다. 사상자가 속출하기 때문이다.

나는 중대장의 의뢰로 중대장의 저축된 봉급을 후방의 집으로 전달하기 위해 연대에서 10일 간의 특별 외출증을 발급 받았다. 중대장 집은 경기도 이천군 대월면 대흥리다. 그 당시 교통수단은 영종여객 버스와 평화여객 버스가 전방지구에 하루 몇 번 밖에 운행하지 않아, 교통이 매우 불편하여 웬만한 데는 걸어서 다니는 것이 보통이다.

버스가 다니지 않는 전방지구는 지나가는 군용차를 이용한다. 나는 군용차, 버스 일반차량을 번갈아 타며 중대장 집에 도착하였다. 나는 깜짝 놀랐다. 중대장 집은, 집이 아니라 움막(땅을 파서 짚으로 덮은 집)이다. 피난 와서 사는 것이다. 중대장 부인은 나를 보고 반가워하며 남편의 소식을 묻는다. 생활 형편은 말이 아니다. 남의 집 품팔이를 해서 생활하고 있으며 어린 아들과 두 식구다. 참으로 불쌍한 생각이 든다.

우리 중대에 요사이 하사관 학교를 갓 졸업하고 일등중사(지금의 하사)로 보충된 이○○ 중사가 있다. 공교롭게도 이 중사의 고향이 대월면 대흥리, 중대장의 부인이 현재 피난살이하는 곳이다. 나는 이 사실을 중대장에게 보고했더니, 중대장은 이 중사와 면담을 하더니 화기소대로 보직시키라고 명한다. 화기소대는 박격포, 무반동총을 다루는 소대로서, 소총소대와 같이 돌격은 하지 않고 후방에서 지원사격을 하므로 안전하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이○○ 중사는 소위, 특과(特科)로 보직된 셈이다. 나는 서무계로서 중대원의 이력에 관해서는 훤히 알고 있다.

여기 온 김에 이중사의 집을 찾았다. 집이 큰 것으로 보아 부농(富農)이 틀림없다. 대문에 들어서서 이○○의 집이냐고 물었더니 대청마루에 앉아 있던 그의 아버지가 나를 보고(군복 입은 것을 보고) 신도 신지 않고 맨발로 뛰어 내려와 어디서 왔느냐고 손을 잡는다. 이○○의 부대에서 왔다고 하니까 나를 끌다시피 안으로 들어간다. 나는 현재 이○○와 같은 중대에 근무하고 있으며 중대장의 심부름으로 왔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당신의 아들)의 중대장 부인이 바로 움막에 사는 분이라고 말했다. 이야기를 듣던 이○○의 아버지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은근히 놀란다. 한참 생각하더니, 말한다. 돌아가서 중대장님께 집의 일은 조금도 걱정 말라고 하며 이○○를 잘 부탁한다고 신신 당부한다. 이○○ 중사는 이 집 외아들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중대장 부인에게 집도 지어주고 땅도 몇 마지기 주고 식량과 생활용품도 도와주었다고 들었다. 세상에는 우연이란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새삼 느꼈다.

이때의 나의 복장은 완전무장이다. 철모와 상의에는 위장망을 씌웠으며, 허리에는 탄띠와 대검(카빈소총 대검), 가슴에는 양쪽에 수류탄을 한 개씩 달고 있으며 카빈소총을 휴대하고 있다. 후방에서는 어딜 가나 차(車) 타기가 용이하다. 차가 오면 총허리를 잡고 흔들면 어느 차라도 일단은 선다. 완전무장을 하여 위압감(危壓感)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때 신은 신발은 앞에 말한, 산 속 도랑에서 죽은 중공군 시체에서 벗겨 온 파란 상해농구화이다.

나는 외출한 김에 집에 들러 며칠을 머물렀다. 전시라 사람 사는 형편이 말이 아니다. 밥 굶는 사람이 많았다. 미군부대서 나오는 꿀꿀이죽으로 연명하는 사람, 그나마도 차례가 안 돌아올 때가 있다고 한다. 나라의 경제사정도 열악(劣惡)하였지만 그것보다도 자유당 정권의 위정자들의 치부와 부정부패로 더욱 생활 형편이 말이 아니다. 그 위정자들은 호의호식하며 금욕(金慾)에 눈이 어두워 이 불우(不遇)한 사정을 아랑곳하지 않는다.

나는 부대에 복귀 하려고 집을 나섰다. 우선 청량리 시장에 들러 중대장에게 선물할 쌍안경(雙眼鏡)을 사 가지고 청량리에서 전방으로 가는 군용차를 탔다. 이 군용차에는 부식 물품이 가득 실려 있었다. 그 당시는 부식을 후방 보급창에서 일선 부대까지 조달하였다.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바로 내가 탄 차가 후방 보급창의 차다. 이 차가 강원도 홍천(洪川)에 오더니 어느 큰 요정(料亭; 고급술집) 앞에 차를 대며 오늘은 여기서 쉰다고 한다. 부식 조달차가 밤을 새어서라도 신속히 조달하는 것이 도리이거늘 해가 중천인데 중간에서 지체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 이 보급차의 책임자는 준위(准尉) 계급장을 단 사람이며 보급창에 소속된 사람이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여기서 같이 쉬기로 했다. 잠시 후에 화류계 여성들이 모이더니 술판이 벌어졌다. 술기운이 오르자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춘다. 이 준위는 보급품 운송 도중 술집에서 술과 가무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아침에 출발하기 전 차에서 고추장 통(한말들이), 간장 통, 자반고등어 상자를 내린다. 술과 여자들 접대비다. 보급부대의 준위 따위가 이 꼴이니 그 위는 오죽하랴. 한심한 노릇이다. 전방에서는 굶주려 가며 사생결단의 전투를 하고 있는데 이 무슨 해괴한 짓이냐. 술값으로 나간 부식은 우리 장병의 피를 빨아먹는 격이며, 또한 그 양(量)은 우리 군인 몇 백 명이 먹을 수 있는 분량에 해당된다.

4.19 혁명 때 권세가인 이기붕의 집, 지하창고에서 참외와 수박이 나왔다고 한다. 국민은 굶주리고 있을 때 호의호식하며 권세를 떨치던 자가 국방장관을 하다니…. 지금 이 준위의 행위도 크고 작기의 차이다 뿐이지 별반 달을게 없다,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이들이 얼마나 많은 청장년들을 희생 시켰던 가, 이들은 민족반역자요, 역적 놈만도 못하다.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즉결처분 했으면 좋겠다. 이들의 숫자가 주러들면 그 만큼 선의의 희생자가 줄어드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면서 모두 썩었던 것이다. 이러니 전방의 병사는 전체가 굶주려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들이었다.

하루는 중대장이 OP로 올라오라고 하여 갔더니 이○○ 중사를 집에 다녀오게 하라고 말한다(현재 이 중사의 고향에 중대장 부인이 피란 가 있다). 문제는 특별 외출증을 구하는 일이다. 이때 우리 중대에 이발사로 있는 전라도 출신 박○○이란 하사(지금의 상병)가 사단 부관부(AG)에 고향 친구가 있다고 말한다. 나는 즉시 박 하사에게 외출증을 구해오라고 사단에 보냈다.

저녁쯤 돼서 대대 부관이 오라고 하여 갔더니 술에 만취된 박 하사를 데리고 가라고 하면서 왜 사병들을 함부로 외출시키느냐고 호통을 친다. 나는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었다. 직감적으로 ‘아, 일이 잘못 되었구나’ 여기고 대대 서무계에게 사유를 물었더니 박 하사가 오랜만에 객지에서 사단 부관부의 고향 친구와 만나게 되어 술을 같이 마신 것이 화근이 됐다고 한다. 기름기 없는 속에 독한 빼갈(화학주)을 마셨으니 취할 수밖에 없지 않는가.

박 하사는 특별외출증 2장을 구해 가지고 오다가 술이 취해 땅에 주저앉아 허우적대는 것을 마침 지나가던 연대장이 보고 대대까지 데리고 온 것이다. 어떻든 일은 잘못됐다. 중대장이 OP로 올라오라고 연락이 왔다. 속담에 잘못된 것은 며느리 탓이라더니 잘못된 일의 책임은 모두 나한테 돌아왔다. 중대장은 나를 보고 어떻게 일을 처리하여 이 꼴이냐고 화를 내면서 따귀를 후려갈긴다. 철모가 벗겨지면서 비탈진 산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나는 기죽은 듯이 가만히 있었더니 너는 오늘부터 화기소대서 근무하라고 말한다. 나는 오늘부터 무반동총(無反動銃) 반장이 됐다. 내 밑에는 분대장이 2명이나 있다. 무반동총이 2문이기 때문이다.

사실인즉 그 동안 중대장은 나를 신임하였으며 오랜 세월동안 같이 있었고 행정업무에 무관심할 정도로 나를 믿었으며 또한 대과(큰 잘못) 없이 행정사무를 잘 처리해 왔다. 그러나 얼마나 속이 상했으면 나를 화기소대로 보내겠는가. (화를 풀기 위해 잠시 화기소대로 보냈던 것임.) 나는 중대장의 마음을 이해하고도 남는다.

그런데 문제가 일어났다. 나 대신 서무 행정업무를 대행하던 일보계(병력계)가 행정 미숙으로 모든 보고서를 잘못 작성하여 말썽이 생겼다. 예를 들어 병적일람표(兵籍一覽表)를 작성하는데 성명이나 본적 또는 주소는 반드시 ‘한문’으로 적어야 하는데 한문에 능통하지 못하여 한문·한글을 병용하여 작성한 것이 말썽이 됐으며 공적서도 육하원칙에 의거 논리적으로 작성되지 않아 각하(却下)돼서 다시 돌아왔다. 대대부관이 이 사실을 중대장에게 알렸던 모양이다.

나는 무반동총반 병사들을 데리고 전방의 사계(射界)청소와 적의 탱크의 침입을 저지하기 위한 차단벽을 돌로서 쌓고 있는데 화기소대 전령이 와서 말하기를 중대장께서 빨리 행정반으로 복귀하라는 지시가 왔다고 한다.

나는 다시 행정반으로 돌아와 그 동안 누적됐던 사무를 말끔히 정리했다. 그리고 연대 병적계(兵籍係)에게 부탁하여 특별 외출증을 구해서 이○○ 중사를 고향에 보냈다. 중대장은 대단히 흐뭇해하며 나를 잠시나마 화기소대로 보낸 것을 미안히 여겼던지 나의 머리를 어루만져 준다. 이 중사는 집에서 돌아와서 먼저 말한 바와 같이 분명 좋은 소식을 중대장에게 전했을 것이다. ‘전시에 졸병이 고향에 다녀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하늘에 별 따기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이○○ 중사는 행운아였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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