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덕(26)씨
양심적 병역거부 선언한 백승덕씨
“저를 고발해주세요.” ‘양심적 병역 거부’를 결심한 백승덕(26·사진)씨는 지난 7일 입영 영장에 적힌 논산훈련소로 가는 대신 병무청에 전화를 걸어 “오늘 입영 못 하겠으니 고발하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여호와의 증인이 아니냐고 묻더군요. 내용을 잘 설명하고 ‘잘 고발해달라’고 말하고 끊었죠.” “불온도서 지정등 신념의 자유 보장 안돼”
부모님·지인등 격려…“소통 물꼬 트이길” 백씨는 앞으로 법원의 판결이 나기 전까지 ‘유보된 인생’을 살게 된다. 경찰·검찰 소환, 재판 판결이 언제 날지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기에 무엇 하나 계획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05년, 대학 연합동아리 ‘가톨릭 대학생 연합회’ 선배인 고동주씨가 양심적 병역 거부를 선언했을 때만 해도 백씨는‘군대 가는 것 정도는 괜찮지 않나’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의 생각도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더구나 현실은 그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가르쳐준 천주교 교리와 어긋나 있었다. “예수님은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아.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라고 말했지만, 가난한 이들에게 고통 분담이 아닌 고통 전담을 강요하는 현실은 예수님의 복음과는 맞지 않았습니다.” 그의 눈에 비친 2009년 한국에선 용산 참사가 일어난 지 8개월이 지나도록 희생자들의 장례식도 못 치르고 있고, 생존권을 요구하며 쌍용자동차 공장에서 농성하던 노동자들은 모두 쫓겨났다. 그는 이런 모습이 ‘국가 권력의 편협성’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국가는 우리가 남북분단과 경제위기라는 전시 상황에 놓여 있다며 약자에 대한 억압을 정당화하면서 강자의 권리는 옹호하고 있죠.” 이렇게 국가가 시민들을 억압하는 현실을 누군가는 지적하고,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 백씨는 ‘저항 수단’으로 병역 거부라는 방법을 택했다. “국가 권력의 편협함은 ‘불온도서’ 지정처럼, 개인의 신념과 자유에 대한 최소한의 보장도 하지 않는 군대에서 가장 노골적으로 나타납니다. 그런 군대에 갈 수는 없습니다.” 백씨가 가는 길은 외롭지 않았다. 부모님도 처음엔 “민주화 투사도 아니고, 왜 네가 나서야 하느냐”며 만류했지만, 이제는 어느정도 아들을 이해해준다. 평화운동단체인 ‘전쟁 없는 세상’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했던 백씨의 애인도 든든한 지원군이다. 대학생 때 함께 ‘가톨릭 학생회’에서 활동하던 친구들과 지인들은 이미 지난 7월 ‘병역거부자 곰곰 후원회’를 만들어 그의 활동을 돕고 있다. 9일 오전 11시 참여연대에서 열리는 병역거부선언 기자회견에는 지난해 7월 촛불집회 진압을 거부하며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했던 이길준(24)씨의 지지 편지도 발표될 예정이다. “제 또래들은 대부분 취업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모두가 그렇게 살 필요는 없지 않겠어요? 제가 병역을 거부한다고 해서 당장 법이 바뀌는 건 아니겠지만, 이를 계기로 사람들 사이의 소통과 고민의 물꼬가 조금이라도 트이길 바랍니다.” 글·사진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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