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임진강에서 야영을 하다 실종된 이들의 가족들이 8일 오후 경기도 연천군 왕징면사무소에 마련된 사고수습대책본부 대기소에서 울며 가족들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연천/이종찬 선임기자 rhee@hani.co.kr
남북관계 기류 어찌되나
정부, 인명피해 격앙 여론 고려 강경 선회
‘금강산 피격’때처럼 타결책 실패 우려도
정부, 인명피해 격앙 여론 고려 강경 선회
‘금강산 피격’때처럼 타결책 실패 우려도
임진강 야영객 실종·사망 사고와 관련한 정부의 대북 대응 기조가 하룻밤 새 ‘신중’에서 ‘강경’으로 돌아섰다.
정부는 8일 오전 통일부 대변인 논평을 통해 북쪽의 임진강 상류 댐 방류를 ‘무단 방류’로 규정하고, 북쪽 책임있는 당국의 충분한 설명과 사과를 요구했다. 앞서 정부는 7일 저녁엔 ‘임진강 댐 수위 상승으로 긴급 방류했다’는 북쪽의 통지문에 대해 “북쪽의 통지는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고 심각한 인명 피해에 대해 전혀 언급이 없었다”며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그러나 추가 해명이나 사과를 바로 요구하진 않았다.
정부는 전날 북쪽의 1차 해명을 들은 뒤 이를 검토한 결과에 따라 사과를 요구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불가피하게 시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천해성 통일부 대변인은 “(북쪽의 통지문이) 강수량 등의 부분에 대해 충분한 설명이 안 되고 인명피해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는 점에 대해 충분한 설명과 사과를 요구하게 됐다”고 말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어제 상황에서는 방류의 원인이 뭔지 규명하는 게 먼저였지만, 북한이 사실상 무단방류를 시인한 셈인 만큼 이 부분에 대해서는 사과를 요구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사과 요구는 실종·사망이 6명에 이르는 심각한 인명피해에 따른 남쪽의 격앙된 여론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현 정부의 지지기반인 보수층을 중심으로 ‘북쪽에 사과도 요구하지 못하는 정부 태도도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 점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8일 아침 여러 보수 신문들엔 전날 바로 사과를 요구하지 않은 정부 태도를 비판하는 기사와 사설이 실렸다. 통일부는 이날 오전 회의를 평소보다 30분 더 길게 열어 북쪽에 사과를 요구하는 방식을 ‘논평’으로 할지 ‘통지문’으로 할지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태 재발 방지 장치 마련을 위한 남북간 협의에 대한 정부 태도도 ‘추진’에서 ‘검토’로 한 발짝 후퇴했다. 천 대변인은 8일 “이런 사태가 재발되지 않기 위해서는 분명히 남북간에 이에 대한 제도화가 필요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면서도 “현재 실무회담이나 회담과 관련한 계획이 마련돼 있거나 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7일 저녁엔 “북쪽이 사전 통보하겠다고 한 점에 유의하면서, 앞으로 남북간 협의를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남쪽은 이날 사과 요구를 통해 ‘공’을 도로 북쪽으로 넘긴 상황이 됐다. 북쪽이 다시 납득할 만한 설명을 내놓고 유감이나 사과의 뜻을 밝혀온다면, 사태 재발 방지 장치 마련을 위한 남북 간 협의 단계로 넘어갈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북쪽이 이미 해명이 끝난 일이라며 추가적 요구에 응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럴 경우 자칫 남쪽의 요구와 북쪽의 반발로 타결책 찾기에 실패했던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망 사건처럼, 최근 개선 조짐이 보이던 남북관계를 다시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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