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등 장애인 관련 단체 소속 장애인들이 9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의 내년 장애인 관련 예산 삭감 방침을 비판하고 있다. 이들은 “예산 삭감으로 내년 장애인 활동보조비·재활치료·자립지원 등의 예산이 자연증가분에도 미치지 못하거나 아예 배정조차 못 받게 될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이종찬 선임기자 rhee@hani.co.kr
기초생활보장 줄고 생계구호비 아예 없애
전문가들 “지원 늘려 노동시장 진입 도와야”
전문가들 “지원 늘려 노동시장 진입 도와야”
“6개월만이라도 더 연장해주면 안 되나요? 한겨울에 지원이 끊길 생각만 하면 눈앞이 캄캄해요.”
지난 8일 서울 영등포 쪽방촌에서 만난 고아무개(67)씨의 손은 퉁퉁 부어 있었다. 허리에는 압박붕대가 감겨 있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박스를 줍느라 무리를 했기 때문이다. 고씨는 올해 7월부터 한 달에 12만원씩 정부에서 생계지원비를 받고 있는데, 12월 말이면 돈을 받을 수 없게 돼 걱정이 태산이라고 했다.
“지금도 월 15만원인 방세가 밀렸는데, 겨울에는 박스 줍기가 더 힘들고 난방비도 많이 들어가 살기가 너무 힘들어요.”
고씨는 10년 전 남편의 폭력을 피해 집에서 도망쳐 나온 뒤 혼자 살고 있지만, 부양의무자(남편과 자녀)가 있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될 수 없다. 정부에서 받는 기초노령연금 8만4000원과, 박스를 주워 버는 푼돈으로 근근이 생활한다. 고씨는 “생계지원비 12만원만 계속 받아도 숨통이 트일 것 같은데…”라고 하소연했다.
정부가 지난 7일 ‘2010년 예산 편성 방향’을 발표하면서 내년 복지예산 비중이 역대 최고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한시생계구호나 긴급복지 등 정작 빈곤층을 위한 예산은 없어지거나 줄어 ‘생색내기’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보건복지가족부는 기획재정부에 2010년 예산을 요구하면서 23개 사업으로 이뤄진 기초생활보장 관련 예산 가운데 한시생계구호 4181억원, 저소득층 에너지 보조금 902억원은 모두 없애고 긴급복지는 260억원을 깎았다. 기초생활 수급자에게 지원되는 생계·주거·교육급여 등의 예산은 수급 대상자가 7000명 줄어 예산도 157억원이 깎였다. 복지부는 “경제위기 상황을 반영해 올해 한시적으로 쏟아부었던 예산을 내년에는 줄이는 것”이라며 “한시생계구호 등은 올해 말 사업이 종료된다”고 밝혔다. 정부 내년 예산안은 곧 결정돼 국회로 넘어갈 예정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복지 관련 전문가와 단체들은 현실을 무시한 발상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김형옥 영등포쪽방상담소장은 “한시생계구호나 긴급복지 지원을 받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고씨처럼 3~6개월 잠깐 지원한다고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라며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오랫동안 빈곤층으로 살고 있는 이들에 대해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류정순 한국빈곤문제연구소장도 “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기초생활 수급자 조건을 완화해, 방치돼 있던 빈곤층을 제도 안으로 들어오게 해야 했다”며 “그런 정책은 펴지 않은 채 여론을 의식해 한시적으로 찔끔 지원하다 끊어버리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연명 중앙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우리나라는 경기가 일부 나아져도 빈곤층의 삶이 좋아지지 않는 사회구조로 접어들었다”며 “긴급복지·생계구호 등의 지원을 내년에도 대폭 늘려, 일할 수 있는 빈곤층은 다시 노동시장으로 진입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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