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이두식(63)씨
중 쩐르 미술관서 초대전 여는 이두식씨
외국화가 최초 베이징미술관 작품 소장
상하이에 아틀리에 10년 무상임대 받아
외국화가 최초 베이징미술관 작품 소장
상하이에 아틀리에 10년 무상임대 받아
“중국 미술계가 지금까지 자기네 컨템퍼러리 회화가 미국 팝 아트의 판박이라는 반성과 함께 자숙기에 들었어요. 그런 점에서 내 그림에 주목하는 것 같습니다.” 서양화가 이두식(63·사진)씨는 베이징 쩐르(今日)미술관 초대전 ‘대상무형(大象無形)’에 화려한 색을 확 빼고 착 가라앉은 데다 붓글씨 비백의 맛을 살린 신작을 내 걸었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쩐르에서의 이번 초대전은 베니스비엔날레 중국관 커미셔너인 조리(趙力)가 기획했다. 번다한 개막식 이튿날인 12일 그는 따산즈 예술특구 안의 ‘갤러리 아트사이드 베이징’에서 기자들과 마주 앉았다. 그곳에서도 그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출품작을 그리느라 두 달 동안 현지에 칩거하느라 수염이 덥수룩한 채 나타난 그는 초대전 성황에 무척 상기된 표정이었다. “중국과는 인연이 깊어요. 2004년 베이징비엔날레에 참가해 외국화가로는 처음으로 베이징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되었지요. 그 이후 한-중 교류전에 자주 초대되었고요, 지난해에는 상하이 정부가 청포구 주가각의 아틀리에를 10년 동안 무상임대해 주었어요.” 1988년 세밀화로 선미술상을 받은 뒤 추상화로 전향해 오방색에다 거친 붓터치, 물감 흩뿌리기 등 기법으로 20여년 같은 화풍을 유지해온 그의 변화는 이례적이다. 그의 그림은 하룻밤 스무 장을 그린다, 싸구려다, 조교가 그린다더라 등 악소문에 시달기도 했지만 원색이 충돌하면서 나오는 ‘좋은 기’가 부적 구실까지 겸하면서 인기를 끌어왔다. 그는 그동안 콜렉터들이 반대해 같은 화풍을 유지하면서 ‘화려한 그림’이 4천점에 이르러 목욕탕 때밀이도 자신의 그림을 갖고 있을 정도가 됐다고 소개했다. 보급된 작품수로 따지면 가히 ‘국민화가’다. “엄청 고생했어요. 극장 간판, 잡지 표지 그림, 삼각지 그림 등 별 것 다 해 봤어요.” 삼각지 그림은 구로동, 북창동, 세종문화회관 뒷편 등에 그림 공장을 차려놓고 풍경, 동물, 인물 등의 그림을 대량제작해 일본, 미국 등지에 수출하던 이발소 그림을 말한다. “100일 된 아들이 폐렴으로 입원해야 했어요. 병원에 데려가니 보증금 3만원을 내라고 하더군요. 당시 조교월급이 1만4000원이었는데….” 그는 마침 그림공장을 하던 선배를 만나 급전 7만원을 쓴 계기로 삼각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7년 동안 1천여점을 그렸다고 했다. 즐겨 그린 것은 조각배가 정박한 해변. 76년 명동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하면서 언더그라운드 화랑을 탈출한 그는 지금도 성업 중인 삼각지 그림계에서 ‘출세 모델’로 꼽히며 그곳 무명화가들의 길거리 전시회가 열리면 초대돼 축사를 한다고 말했다. 그때 익힌 기본기와 속도가 현재 그림의 발판인 점도 감추지 않았다. “20년 전에는 ‘에이썅’ 하면서 추상화로 바꿨는데 이번에는 7~8년 뜸을 들였어요. 그림을 걸어놓고도 잠이 안 옵니다.” 그는 화풍을 바꾸면서 새로운 게 많이 보이고 느낀 게 많다면서 앞으로 흰색과 서예를 좀 더 연구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베이징/글·사진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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