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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정부 의료·생계지원 직접 나설 때”

등록 2005-05-29 19:45수정 2005-05-29 19:45


치료받지 못한 상처, 원폭피해
피해자들 정부대신해 일본과 투쟁
노대통령 해결 뜻…복지부는 뒷짐
조승수의원 특별법안 마련 기대감

이아무개(83)씨는 1945년 8월 일본 히로시마에서 터진 원자폭탄 방사능에 노출됐다. 심장·신장·폐 등 제 기능을 하는 장기가 거의 없는 지경이다. 고혈압은 물론이고 두통도 떠나질 않는다. 이씨는 그나마 91년 조성된 원폭피해자 복지기금에서 일부 의료비 지원을 받지만, 아들 이정인(가명·58)씨는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한다. 원폭 피해가 ‘입증’되지 않은 2세이기 때문이다. 이정인씨는 젊을 때부터 위장병, 당뇨, 척추질환을 달고 다닌다. 지금은 두통이 심해 핵자기공명장치(MRI) 검사를 받고 싶지만 비싸서 엄두도 내지 못한다.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지 60년. 그 세월은 한국인 원폭 피해자에겐 ‘방치의 역사’일 뿐이다. 이 장구한 세월 동안 한국 정부는 이들에 대한 대략적인 규모와 건강실태조차 파악하지 않고 있고, 일본 정부는 한-일 협정으로 모든 걸 ‘털었다’며 배상을 거부하고 있다. 인도지원을 내세운 일본 정부의 ‘생색내기’와 한국 정부의 책임회피 속에서 이들의 몸과 정신은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원폭 피해자들과 관련 단체들이 다음달 임시국회에서 조승수 민주노동당 의원이 발의하기로 한 ‘원자폭탄 피해자 진상규명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안’(가칭)을 주목하는 까닭이 여기 있다. 법안은 한국원폭피해자협회에 등록된 2300여명의 원폭 피해자 1세뿐 아니라 7천여명(최고 8만~9만명)으로 추산되는 2세들에 대한 의료·생활 지원대책을 담고 있다. 원폭치료 전문병원 설립도 못박았다. 법안이 의무화한 피해자 실태조사 결과에 따라 법 적용을 받는 피해자 규모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원폭 2세 이아무개(54·여)씨는 29일 “최소한 병원비 지원이라도 받으면 좋겠다”며 “특별법을 계기로 사회 인식이 바뀌어 원폭 피해자들도 떳떳이 살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자식들이 결혼할 때 피해를 볼까봐 자신이 원폭 피해자라는 것을 가족들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피해자들의 바람은 원폭 피해자 지원을 일본에 떠넘기고 있는 한국 정부에 대한 불만과 겹친다. 피해자들은 그간 정부를 ‘대신’해 일본 정부와 직접 싸워왔다. 68년 원폭 피해자 손귀달씨가 일본으로 밀항해 일본 정부에 치료를 요구한 것이 시작이었다. 70년에는 손씨의 오빠 손진두씨가 일본에 밀입국해 체포된 뒤 7년여의 법정싸움 끝에 78년 일본인에게만 발급되던 ‘피폭자 건강수첩’을 손에 넣었다. 이후에도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은 계속됐다. 2002년 곽귀훈, 2004년 최계철(사망)씨가 승소함으로써 일본 밖에 거주하는 한국인 피해자들도 일본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놨다. 재판 과정에서 한국 정부의 지원은 전혀 없었다.

정부는 최근 노무현 대통령의 삼일절 기념사를 계기로 그동안의 자세를 조정할 태세다. 정부는 여기서 “한-일 협정 범위 밖의 사안(원폭 피해자 문제 등)과 관련해 일본 정부가 인류 보편적 규범을 준수하는 차원에서 해결해 나가도록 촉구할 것”이라며 “우리 정부가 부담할 일은 직접 해결해 나간다”는 태도를 밝혔다. 그러나 원폭 피해자 문제에 대한 정부의 인식이 뿌리까지 바뀐 것은 아니다.


2월 국가인권위원회가 “원폭 피해자 1세뿐 아니라 2세에 대해서도 건강상의 피해가 존재하는지 조사하고 정책적 지원 방안을 시급히 마련하라”는 실태조사 결과를 내놓았지만, 복지부는 “추가로 예산을 들일 필요 없이 일본의 연구결과를 기다리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특별법안을 마련한 조 의원은 “복지부 관련 법안이 발의될 예정인데도 법안에 대한 문의조차 없다”고 말했다.

인도주의실천 의사협의회 김진국 공동대표는 “정부는 부당한 한-일 협정 체결로 원폭 피해자들이 구제받을 권리를 빼앗았다”며 “질병으로 자활능력을 상실한 원폭 피해자와 그 자녀들에 대한 의료 및 생계 지원은 마땅히 정부가 떠맡아야 할 책임”이라고 강조했다.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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