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폭치료 전문병원 세 차례 설립안 무산
‘원자폭탄 피해자 진상규명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안’(가칭)은 원폭치료 전문병원과 전문요양기관 설립을 의무화하고 있다. 현재 한국에는 원폭 피해자 치료를 위한 전문병원이 한 곳도 없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전문병원을 중심으로 ‘원폭치료 시스템’을 구축한 일본과 대조된다.
<한겨레>가 1968~73년의 외교문서를 확인한 결과, 한국 정부는 일본이나 미국의 지원을 통한 원폭치료 병원 설립 계획을 여러 차례 세운 바 있다. 정부는 69년 일본 민간단체인 ‘핵병기금지 평화건국민회의’로부터 기부금을 받아 경기도 고양군 신도면 송리산에 원폭피폭자센터를 건립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2만2560평의 대지에 병원(100병상), 요양소(200명), 재활원, 아파트(200가구)가 들어서는 ‘대형사업’이었다. 공사비는 당시 돈으로 5억2900만원이 책정됐다.
73년에는 일본의 무상원조를 통한 병원설립 계획이 다시 세워졌다. 정부는 “원폭 피해를 입고 귀국한 한국인 피폭자 수는 2만여명으로 추산된다. 그들은 귀국 뒤 병고에 신음하고 신체장애로 인해 생활에 극심한 고난을 겪고 있어 피해자 및 가족에 대한 치료와 재활을 위한 병원, 직업훈련소, 재활원의 설립이 절실히 요청된다”고 필요성을 밝혔다. 위치는 경남 진주로 예정됐다. 필요 예산은 550만달러였다. 그러나 이를 추진한 보건사회부와 다른 무상원조 계획과 경합하게 된다며 난색을 표한 외무부가 맞서면서 이 계획은 흐지부지됐다.
74년도 외교문서를 보면, 설립 계획은 다시 수정된다. 보사부는 경남 진주나 부산에 대지 1만평, 400병상 규모의 6층짜리 병원과 직업훈련소, 재활원 설립 계획을 다시 짜 정부에 건의했다. 하지만 이 계획도 공중에 떠 버렸다. 정부의 병원 설립 계획들이 예산과 정책 추진력을 확보하지 못한 채 번번이 무산된 것이다.
29일 숨진 김형율 한국원폭2세 환우회장은 지난 19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피해자와 가족들은 질병으로 인한 빈곤의 악순환에 시달리고 있다”며 “치료는 물론 사망 원인 등 원폭피해 실태를 밝히기 위해서라도 전문병원 설립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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