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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블로그] 박원순의 눈물이 준 믿음

등록 2009-09-18 13:27

나는 오래 궁금한 것이 있었다. 울릉도에만 자생한다는 섬나무딸기의 진화에 관한 것이었다. 성인봉 100~500m 사이에서 생육한다는 섬나무딸기는 꽃과 잎이 크며 엽면과 잎 뒷면의 굵은 잎맥에 갈퀴 같은 가시가 겨우 있을 뿐 원줄기에는 가시가 없다고 한다. 육지의 딸기나무가 거친 가시를 제 몸의 갑옷인양 두르고 있는 것과는 대조를 이룬다.

연구자들(박재홍 경북대 생물학과 교수팀)은 “가시가 없어진 것은 토끼 같은 천적이 없어서일 것”이라고 설명한다.(한겨레신문 2009년 7월 22일자) 울릉도는 좁고 단일 섬이어서 하나의 생물계통이 둘 이상으로 나뉘는 종분화가 아닌 종의 형태가 분화하는 ‘향상 진화’가 일어난다”며 “울릉도는 그런 진화가 벌어지는 세계 유일한 장소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따르면 “진화에는 향상진화와 분지진화가 있는데 향상진화는 한 계보 안에서 일어나고 분지진화는 한 계보가 둘 이상의 계보로 분지하는 것”이어서 “200만 년을 거치는 동안 인류 두개골의 크기를 2배로 증가시키고 말발굽의 수를 4개에서 1개로 감소시킨 진화는 향상진화의 대표적인 예이며, 200만 종 이상 되는 다양한 생물을 만들어낸 것은 분지진화의 대표적인 예”라고 한다.

환경에 대한 적응이기도 하며 퇴화라 할 수도 있겠고 길들여진 결과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일반적 딸기나무와는 다른 길을 걸어온 것이다. 섬나무딸기는 ‘향상진화’를 통해 가시 없는 몸을 만들 수 있었으나 그 생물의 내면이 수천만 년 동안 사람처럼 수련하고 단련한 결과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오랫동안 나는 이 나무가 제 몸의 엽면과 잎맥에 남은 가시들을 온전히 모두 제거할 수 있을지에 관심을 가졌었다. 울릉도가 온전히 섬나무딸기가 진화하고 성장해 온 환경을 계승할 때, 이 나무의 가시에 관한 위대한 진화가 계속되지 않을까 막연한 생각을 가졌왔었다.

박원순 희망제작소 이사는 지난 6월, 국정원이 민간인을 사찰하고 있다고 전제하면서 대통령과 국정원장을 정조준하여 레임덕과 구속 가능성을 언급하고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전달한 바 있다. 국정원이 박 이사에게 “허위사실을 말해 국정원과 국가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2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낸 것은 며칠 전의 일이다. 개인을 향한 소송은, “십년을 하루같이 세상의 좋은 변화를 위하여, 이웃과 사회를 위하여 열정을 불살라 온” 그에게 씌워지는 국가의 주홍글씨이다. 박 이사는 “소심한 저는 소송 이야기를 들으면서 스스로 위축되기도 했다”면서 “갑자기 노무현 대통령 생각도 났다.”고 말하였으나 용기를 내어 “영광이다, 이 시대의 고난 받는 사람들과 함께 해서 너무 행복하다”고도 하였다. 영광과 행복을 말하는 그의 목소리 어딘가에는 사랑 많으신 예수의 향기가 묻어있는 듯 하다. 그러나 기자회견장에서 희망제작소를 운영하며 겪은 이야기를 문건, <진실은 이렇습니다>를 공개하고 소심하거나 훌륭한 그가 눈물을 흘렸다. 안경 너머 눈물을 훔치는 그림이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그는 문건 안에서 많은 이야기를 하였다. 참여연대를 떠난 후 정부비판이나 투쟁, 애드보커시 운동과 일부러 거리를 두었다고 했다. MB와 친하게 된 사연과 결별한 이야기, 선거과정에 중립을 지킨 이야기, 행정안전부와 하나희망재단의 계약해지 이야기, 아름다운 가게를 둘러싼 이야기, 민간단체들에 개입하는 국가권력에 관한 이야기 등은 우리 곁의 일상적 굴종과 권력의 야만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주는 것이었다. 압제와 싸울 것이며 역사와 미래가 우리 편이라는 그의 말은 너무 외로운 것이어서 나는 저녁 내내 그의 “진실”을 읽었다.

그가 운명을 말하면서 “대한민국의 희망이라는 것이 결코 제 마음대로, 제 계획대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고 한 절망은 뜨겁고 투명한 인간의 것이었다. “민주주의는 깨지기 쉬운 질그릇 같은 존재”라는 평소의 신념과, 미국 시민권연맹 본부 정문 앞에 걸린 문구 “Freedom is the price of permanent vigilance 자유는 영원한 감시의 대가이다”를 인용하여 시련과 수난에 북받친 그의 감정을 드러내어 비장함을 느끼게 하였다. 그는 더 이상 투사가 아니었고 국가의 절차적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한 사람의 시민이었다.


나는 그의 모습에서 ‘가시 없는 세상, 가시 없는 사람들’을 만들어가려고 몸부림치다 스러져 있는 한 인간을 발견하였다. 만약 우리가 그의 영혼의 진화를 옹호하고, 그의 환경을 감시하고, 그의 천적을 경계하지 않는다면 그의 몸은 영원히 망가질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다시 문득 들었다. 그가 우리 내부의 날 선 가시를 벗는 진화를 그만두고 그 어디에서 뒹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다.

울릉도가 섬나무딸기가 ‘향상진화’를 일으킨 세계 유일의 공간이라 이야기되듯, 나는 우리가 사는 공간이 희망제작소의 야심찬 ‘대한민국 희망만들기 프로젝트’가 실현되는, 세계 안의 유일한 곳이 되어주길 열망한다. 나는 그를 통해 우리의 공간이 “시민들의 좋은 아이디어를 모아 실현하는 사회창안, 은퇴한 전문직 리더들에게 봉사와 나눔으로 인생후반전을 설계하도록 하는 행복설계아카데미, 꿈과 길을 잃어버린 젊은이들과 사회인들에게 다시 꿈을 심어주는 소셜디자이너스쿨,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소기업사장이 되도록 하는 꿈을 꾸는 소기업발전소, 지역을 살리고 활성화하기 위한 각종 연구, 세미나, 컨설팅”을 꿈꾸는 공간이 되기를 희망한다. 낡은 사회의 차별과 독점이 그를 통해 다소나마 옅어지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우리 모두의 몸에 돋은 가시의 소거가 그로부터 옮아 와‘분지진화’하게 되는 눈부신 그 무엇을 꿈꾸어 본다.

지난여름, 나는 그의 책 <마을에서 희망을 만나다>를 읽었다. 그가 길 위에서 산, 몇 년간의 기록이 거기 있었다. 소외된 곳을 찾아서, 자신의 삶을 던져 지역을 위해 묵묵히 헌신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인터뷰한 기록이었다. 그는 그가 만난 사람들을 우리 시대의 진정한 영웅들이며 시회를 이끌어 갈 리더라 불렀고, 절망과 불가능 속에서 정화수를 길러 낸 두레박 같은 존재라 하였다. 부패와 부조리, 비능률과 철밥통의 관료 풍토 속에서 그가 우리시대의 대안을 찾고 희망을 만나고자 한 길은 눈물겨운 것이었다. 구속과 제적, 검사와 변호사를 거쳐 참여연대, 아름다운재단과 아름다운가게로 달려 온 그의 삶이 그 길에 닿아 있는 것이었다.

나는 오늘, 문득 눈물 흘리는 그에게서 시대의 예감을 읽었다. 나라에 길흉사가 있을 때 표충비(表忠碑)가 땀을 흘렸듯이 그의 눈물에서 시작되는 시련과 수난을 읽었다. 명찰추호(明察秋毫)와 시이불견(視而不見)을 생각하였다.

나는 몇 년 전 <아름다운재단>에 내 소득의 1%를 기부하였었다. 그러다가 얼마 되지 않던 기부를 끊었었다. 아름다운재단이 아름답게 잘 나갈 즈음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핸드폰을 장만하면서 요금이체 자동납부를 걸어드려야겠다, 그렇게 간단히 생각한 때문이었다. 오늘 열지 않았던 아름다운재단의 메일 “만원의 나비효과”를 읽었다. 다시 기부를 해야겠다. 그가 흘리는 눈물이 헛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가시 없는 섬나무딸기의 진화를 믿는다. 비록 사람처럼 사유하는 능력이 없으나 위대한 본능이 있고, 서식지 외로운 섬의 오롯함을 믿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하는 묘비명을 믿는다. 말씀을 부린 이가 곁에 없으나 산 자가 더 많으며 우리 역사의 진화에 관한 것을 믿기 때문이다. 우리시대의 소셜 디자이너(Social Designer) 박원순 변호사의 진화도 믿는다. 그가 걸어 온 길과 희망을 믿기 때문이다. 그의 눈물과 영혼의 진정성을 믿기 때문이다.

* * *

섬나무딸기

이제, 헐벗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너에게
누가 가시 몇 개,
눈부신 갑옷 대신 몸 위에 얹어주랴
해와 달에게 물어보았으나, 새떼들에게 물어보았으나 …
누가, 거듭 솜털의 형상인 너에게
잃어버린 너의 가시를 위하여
짧고 아름다운 헌시(獻詩) 몇 줄
진화(進化)의 줄거리 위에 덧얹을 수 있으랴
섬 안의 너에게
가시없는 네에게
어쩌면 우리들 안의 너에게(20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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