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의혹' 수사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으나 사건의 핵심 관계자들이 해외로 잠적한 허문석씨에게 `공'을 넘기는 양상을 보이고 있어 중요 의혹의 진실 규명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허씨도 체류지인 인도네시아에서 검찰의 수사상황을 언론 등을 통해 수시로 확인하고 있음에도 자신에게 쏠리고 있는 각종 의혹에 아무런 해명도 하지 않아 혼자서 `총대'를 메기로 작심한 게 아니냐는 의심이 들게 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29일 "이광재 의원은 애초 사건을 전대월씨의 사기극이라고 했다가 검찰 조사를 받을 때는 허문석씨의 사기극이라고 한다"며 이 의원이 이번 사건의몸통으로 허씨를 지목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갖게 했다.
이번 수사의 정점이 정치권 등의 유전사업 개입 또는 외압행사 여부를 밝히는것이라면 그 열쇠는 결국 이 의원을 통해 전대월씨와 손잡고 철도공사를 유전사업에끌어들인 허씨가 쥐고 있는 셈. 그러나 검찰이 허씨를 조사하지 못한 탓에 허씨와 관련된 사건 관계자들의 논리를 깰 만한 결정적인 증거나 진술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아 막판 수사에 한계를 느끼고 있다.
지금까지 수사 결과 허씨는 이번 사건의 중요 길목에서 핵심 역할을 맡은 흔적이 곳곳에서 포착됐다.
우선 주목되는 허씨의 역할은 유전 인수자금 대출 과정에서 제기됐다.
그는 우리은행 고위층에 대출을 부탁했거나 이헌재 전 재경부장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는의혹이 제기됐지만 당사자들이 부인해 사실을 확인하지 못한 상태다.
특히 허씨가 이 전 장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는 부분은 왕영용 철도공사 사업개발본부장이 허씨로부터 직접 들었다고 진술했지만 허씨를 조사하지 못한 데다 이 전장관이 전면 부인하고 있어 수사는 한 발짝도 진전되지 못했다.
이광재 의원의 소개로 지난해 11월 허씨가 석유공사 간부를 만나 비축유기금 사용문제를 논의한 사실도 확인됐지만 허씨를 조사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의원이 허씨를 석유공사측에 소개한 자세한 경위를 밝힐 수 없는 상황이다.
이의원은 지난해 7월 전대월씨가 유전사업 아이템을 갖고 자신을 찾아오자 석유공사를 소개하자니 공공기관에 부담을 줄 것 같아 민간인 허문석씨를 소개했다고 검찰에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 이의원이 지난해 11월8일 오전 자신을 찾아온 신광순 전 철도공사 사장에게 "철도공사가 유전사업도 하느냐"며 핀잔까지 줬던 터에 오후에 허씨와 왕씨의 방문을 받고는 선뜻 석유공사 관계자를 연결해준 이유가 무엇인지도 허씨가 있어야 제대로 규명할 수 있는 부분이다.
아울러 지난해 7~9월 에너지 관련 정책자료집 발간차 허씨와 이의원이 수차례만났을 때 철도공사의 러시아 유전사업 얘기가 오갔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허씨의 말이 없어 진상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전 후원회장 이기명씨 관련 의혹도 허씨를 조사하지 않고는 영원히 의혹으로 남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허씨는 올 4월4일 인도네시아로 출국하기 전 감사원 조사 등과 관련해 이씨와 6차례 통화하면서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도 허씨가 말해줘야 할 부분이다.
이 외에 왕영용씨가 작성한 문건에서 제기된 청와대, 정부, 이의원의 유전사업개입의혹도 마찬가지다.
왕씨는 작년 7~8월께 작성한 `러시아 유전개발 투자사업 프로젝트'라는 철도청내부 문건을 통해 청와대, 정부, 이의원 등이 사건에 개입하고 있다고 주장한 데 대해 검찰 수사착수 전 "허문석씨의 말만 믿고 확인 없이 작성한 것"이라며 허씨에게모든 의혹의 열쇠를 떠넘긴 바 있다.
검찰은 내달 3일께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여태 제기된 각종 의혹 중 허씨의 진술을 듣지 못한 부분도 다른 관련자 조사를 근거로 나름의 판단결과를 밝힐 예정이지만 국민 여론이 수긍할지는 미지수이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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