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훈(49) 금속노조 현대차 지부장
현대차지부장 실리파 당선
강성파 도덕성 상처, 잦은 파업 피로감이 원인
비정규직 보호 노린 ‘지역지부 전환’ 차질 예상
강성파 도덕성 상처, 잦은 파업 피로감이 원인
비정규직 보호 노린 ‘지역지부 전환’ 차질 예상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장(현대차 노조위원장) 선거에서 실리 노선의 집행부가 탄생한 것은 노동계에서 하나의 ‘사건’으로 받아들여진다. 14년 만에 집행부 성격이 확 바뀐데다, 노동계 전체의 노선에 지각변동이 일 수 있는 요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 왜, 실리 노선이 승리했나? 1차 투표에서 2위로 결선에 오른 ‘강성’의 권오일(43) 후보 쪽은 1위로 결선에 오른 실리·온건 노선의 이경훈(49) 후보를 결선에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1995년 울산공장 노동자 양봉수씨가 노사협조주의를 비판하며 분신자살한 이래 지금껏 1차 투표에서 실리·온건 후보에게 밀렸던 강성 후보는 결선에서 늘 역전승을 거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마법’은 더는 통하지 않았다. 선거 막판에 권 후보 쪽이 이 후보 쪽을 ‘어용’이라고 몰아붙이기도 했지만 먹혀들지 않았다.
이는 지난 14년 동안의 강성 집행부에 대한 불신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민주노조의 자산인 도덕성이 무너진 것이 직격탄이 됐다. 회계 투명성 문제로 위원장 2명이 현직에서 물러났고, 전직 위원장 1명은 취업비리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현 집행부가 노조 창립 22년 만에 처음으로 임금·단체협상 도중에 지도력 부재를 이유로 스스로 사퇴해 조기 선거를 치르게 된 것도 온건 성향 후보에 유리한 상황으로 작용했다.
금속노조에 대한 조합원들의 거부감도 표심에 많이 반영됐다. 산업별 노조인 금속노조로서는 공동교섭과 공동투쟁이 생명이지만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의 선봉대 구실을 해온 조합원들은 지난 14년 동안의 잦은 파업에 피로감을 느껴왔다. 여기에 현재의 기업지부를 없애고 지역지부로 재편하려는 금속노조의 지침에 반발하는 조합원들의 거부감도 많았다. 기업지부가 사라지면 전국의 사업장이 전국의 각 지역지부 아래로 들어가 현대자동차 노조의 독자적인 파업권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 노동계, 지각변동 예고? 현대자동차지부를 핵심 사업장으로 두고 있는 금속노조는 앞으로 2년 동안 가시밭길이 예상된다. 15만명의 금속노조 조합원 가운데 3분의 1가량을 차지하며, 그동안 금속노조의 기관차 구실을 했던 현대자동차지부의 실리 노선은 명분과 정치투쟁을 중요시하는 금속노조 집행부와 노선 대립을 일으킬 여지가 적잖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후보가 당장 금속노조를 탈퇴하는 극단적인 행동을 취할 가능성은 매우 작다. 하지만 그의 지난 행보와 공약 등을 고려할 때, 대정부투쟁 등 정치성 파업에 제동을 걸 것은 확실하다는 데에는 대체적으로 이견이 없다.
대기업 안에 정규직-비정규직 노조가 따로 존재하는 구조를 바꾸어서 해고의 칼바람에 떨고 있는 비정규 노동자들을 보호하고 금속노조의 단결력과 교섭력을 강화하기 위해 올해 안으로 현대자동차 노조 등 기업지부를 지역지부로 전환하려는 금속노조의 계획도 사실상 어렵게 됐다. 이 후보가 기업지부 해소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이를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금속노조가 현대자동차 노조를 제명하기도 어렵다. 이래저래 금속노조와 현대자동차 노조 집행부 사이에 크고 작은 갈등이 끊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노동운동의 투쟁력 저하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주력부대인 금속노조의 투쟁력이 약화하면 민주노총도 힘을 잃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현대자동차 노조 집행부가 변했다고 해서 당장에 노조 자체가 보수 성향으로 돌아서지는 않겠지만, 진보 노동계에서 현대차 노조가 차지했던 위상이나 역할이 커서 일정 부분 투쟁 노선에 변화가 불가피할 것 같다”고 말했다. 울산/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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