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납북 아버지 생사라도 알려주오”
1987년 1월15일, 부산에 사는 평범한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최우영(35)씨의 삶은 하루아침에 송두리째 바뀌었다. 최씨의 아버지 종석(60)씨가 타고 조업하던 어선 동진호가 납북된 것이다.
어로장으로 일하면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그가 사라지고 나자 최씨 가족의 삶은 극도로 힘들어졌다. 전두환, 노태우 정권은 그들 가족을 월북자 가족처럼 감시하고 탄압했다. 납북자가 언제 간첩으로 다시 내려올지 모른다는 이유에서다. 연좌제 때문에 취직도 쉽지 않았다.
아버지의 생사 및 언제 송환될지를 묻는 탄원서를 정부에 몇 차례 냈지만 최씨에게 날아온 것은 아버지가 북한에서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돼 있다는 소식뿐이었다. 더 이상 두려운 것이 없어진 최씨는 같은 처지의 납북자 가족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고 2000년 7 가족을 모아서 가족모임을 만들었다. 77년 이민교, 최승민 고등학생 납치사건의 피해가족, 오스트리아에서 납북된 유학생 이재환씨 등의 가족들이 참여했다. 현재는 50여 가족이 납북자가족협의회에 참가하고 있다. 최씨는 이 협의회의 회장을 맡고 있다.
최씨는 “납북자 문제는 정치적인 사상이나 정책적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라며 “이 문제는 납치되고 오랫동안 고통 받은 사람들의 인권의 문제이며 남북이 통일과 평화의 길로 가는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최씨는 “무엇보다도 정부에서 납북자의 실체를 인정하고 국가에 그 송환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규정한 특별법 제정이 시급하다”며 “인권 문제에 관심이 많은 시민단체들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납북자가족협의회는 지난 2002년부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벌이고 있다. 이 소송을 내게 된 것은 역설적이게도 남북 이산가족 상봉에서 납북자와의 만남이 추진되는 것을 보면서부터다. 최씨는 “전쟁이라는 천재지변 때문에 헤어진 사람들과 납치라는 범죄 때문에 헤어진 사람들이 똑같이 취급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1심에서 패소해 현재 고등법원에서 항소심을 벌이고 있으며 선고예정 기일은 6월20일이다. 15차 남북 장관급회담이 열리기 하루 전날이다. 최씨는 “납북자 가족들은 사실 손해배상보다는 생사 확인과 송환을 원하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최씨는 “북한이 일본과도 납치자 문제를 풀어냈는데 한민족인 남한의 납북자 문제를 못 풀어줄 이유가 없을 것”이라며 “이번 남북 장관급회담에서 꼭 납북자 문제가 거론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형섭 기자 sub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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