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권장도서를 불온서적 팔았다며…
“자기들 필요할 때마다 끄집어내 맘대로 써먹는 법, 이제 없어져야 하는 것 아닙니까?”
경기도 수원시에서 헌책방을 운영하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한겨레> 2008년 12월1일치 8면) 2년여 만에 무죄판결을 받은 윤한수(41)씨는 “아직도 긴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고 말을 이었다.
윤씨의 ‘악몽’은 지난 2007년 5월 시작됐다. 고교 졸업 뒤 책만 팔아온 그에게 어느날, 경찰이 느닷없이 서점에 들이닥쳐 “공산주의를 찬양·선전하는 책을 팔고 있다”며 사진을 찍어댔다. 며칠 뒤 다시 나타난 경찰은 중학생 권장도서인 <전태일 평전>과 같은 내용의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 등 79권의 책을 ‘불온서적’이라며 압수해갔다. 대부분 대학이나 국회도서관에서 빌려주는 책이었다.
윤씨는 예닐곱 차례 경찰에 불려다니며 “누구나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책을 팔았는데 무슨 죄가 되느냐”고 항변했지만,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같은 해 10월 그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찬양·고무죄)로 불구속 기소했다. 2003년 9월부터 2007년 5월까지 불온서적 32권을 팔고 79권을 소지한 혐의였다.
재판이 10여 차례에 걸쳐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국선)변호인’마저 “검·경이 제시한 모든 혐의를 인정하고 집행유예라도 받자”는 ‘희한한 설득’할 때는 그야말로 눈 앞이 캄캄했다고 한다. 재판정에 억울함을 토로하던 그는 검·경이 지목한 ‘불온서적’이 사실은 국회도서관 등지에서 흔하게 대출받는 책임을 입증하기 위해 서울대와 국회도서관 도서목록을 재판부에 제출하기도 했다.
결국, 수원지법 형사9단독 김양훈 판사는 지난 30일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을 모두 종합해 보더라도 피고인의 행위로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할 만한 것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윤씨는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위해서라도 검찰이 항소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검찰은 “판결문을 정밀 검토한 뒤 항소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수원/김기성 기자 player0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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