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지시따라 일정시간 근무” 부당징계 무효 판결
골프장 경기보조원(캐디)을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내용의 판결이 처음 나왔다. 이에 따라 노조를 만들고도 개인사업자처럼 간주돼 신분상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던 캐디들이 근로기준법에 따른 구제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수원지법 민사9부(재판장 최동렬)는 9일, 송아무개씨 등 캐디 43명이 경기 용인시 88골프장 운영회사를 상대로 낸 부당징계 무효확인 소송에서 원고 승소를 판결했다. 이 골프장은 국가보훈처 소유이며 한 전문회사에 맡겨 운영중이다.
재판부는 “경기보조원과 회사가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았더라도 경기보조원이 회사의 지시와 일정한 근무시간, 캐디마스터의 총괄관리 등에 따라 종속적인 근로를 제공하고 있다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캐디가 노동자라는 근거로 △‘캐디 피’는 회사의 위임에 따라 이용객이 캐디에게 직접 지급해 임금의 성격을 띠고 △사업자는 정기교육, 순번제 근무, 캐디마스터의 제재 등을 통해 캐디를 지휘·통제하고 있으며 △캐디 스스로 수익조절과 경기 출장을 결정할 수 없는 등 사업자로서의 요소가 희박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원고인 캐디들에 대한 제명과 출장유보의 효력에 대해서도 “절차적 정당성이 결여됐거나 징계가 과중해 무효”라고 판결했다.
88골프장은 지난해 9월 경기진행 문제로 관리자와 마찰을 빚은 캐디 정아무개씨를 제명했고, 같은 해 11월 인터넷에 이를 비판하는 글을 올린 다른 캐디 50여명에게 무기한 출장유보를 명령했다. 이어 지난 1월에는 무단결장을 이유로 캐디 노조 간부 3명을 제명했다. 이에 징계를 받은 캐디 43명은 법원에 부당징계 무효확인 소송을 낸 뒤 지난달 14일부터 골프장 소유자인 국가보훈처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에 앞서 중앙노동위원회는 지난 4월 이 골프장 캐디 정아무개씨가 제기한 부당해고·부당노동행위 구제재심 신청에서 정씨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상 근로자로 판정해 부당해고를 인정했으며, 골프장은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법무법인 ‘참터’의 오윤식 변호사는 “그동안 캐디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해 달라는 소송이 잇따랐으나, 증거부족 등으로 번번이 패소했다”며 “이번 판결은 캐디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은 1996년 7월의 대법원 판결을 뒤집은 의미있는 판결”이라고 말했다.
수원/김기성 기자 player009@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