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성적 원자료 조전혁 의원에 제공, 고교 석차 공개돼
‘가공 자료만 제공’ 원칙 깨…전교조 “고교등급제 불보듯”
‘가공 자료만 제공’ 원칙 깨…전교조 “고교등급제 불보듯”
전국 고교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성적 순위가 12일 언론을 통해 처음으로 공개됐다. 이에 따라 학교 서열화를 부추기고 고교등급제로 악용될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교육과학기술부가 학교별 성적 등 민감한 정보가 담긴 수능 성적 원자료를 공개한 데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조선일보>는 이날 교과부가 조전혁 한나라당 의원에게 최근 건넨 수능 성적 원자료를 분석해, 지난해 수능 언어·수리·외국어 세 영역의 평균점수와 영역별 1등급 학생 비율의 전국 학교별 순위를 보도했다. 이 자료를 보면, 지난해 수능에서 외국어고와 자립형사립고(자사고)가 수능 성적 상위권 학교의 대부분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해 양성광 교과부 인재기획분석관은 이날 “지난달 22일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질의 때 안병만 장관이 수능 성적 원자료를 국회의원들에게 연구 목적으로 제공하겠다고 밝힌 직후 최근 5년간 학교별·개인별 수능 점수가 담긴 시디를 조 의원을 포함한 7명에게 제공했다”며 “학교별 성적이 공개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학교 이름을 코드로 처리해 넘겼다”고 밝혔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조 의원이 건넨 원자료를 바탕으로 학교 이름을 추적해 수능 성적순으로 1위부터 100위까지 전국 학교의 서열을 매겼다. 그동안 교육계에서는 수능 성적 원자료가 의원들에게 건네질 경우, 학교 이름이 지워졌더라도 시·군·구별 고교 수와 학교별 학생 수 등을 조합하면 학교를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어 전국의 모든 학교를 수능 성적으로 줄세우는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우려해왔다.
이 때문에 교과부는 지난 7월 국회의원들에게 수능 성적 자료를 처음으로 공개하면서, 국회의원이 자료를 요청할 경우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분석·가공한 자료만 제공하는 등 엄격하게 관리해왔다. 심지어 자료 공개를 요청한 국회의원들에게 ‘연구 목적이 아닌 다른 용도로 사용할 경우 형사처벌도 감수하겠다’는 내용의 서약서도 받았다. 현행 ‘교육관련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특례법’은 공개된 교육 관련 정보를 연구나 정책개발 이외의 목적으로 사용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교과부는 조 의원 등에게 수능 원자료를 제공하면서 서약서조차 받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양성광 분석관은 “국회의원이 수능 원자료를 요청하면 제공할 수밖에 없다”며 “그 자료를 어떻게 이용하느냐는 국회의원의 몫”이라고 해명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성명을 내어 “이번 성적 공개로 외고 진학을 위한 무한전쟁이 가속화하고, 학부모의 사교육비 지출과 학생의 고통은 가중될 것”이라며 “경쟁교육 강화, 수능 위주의 학교교육, 대학의 고교등급제 적용 시도 등 수능 성적 공개에 따른 부작용에 대해 교과부와 조 의원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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