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청동기시대 인공 연못이 경북 안동시 저전리 유적에서 확인됐다.
경북 영주 소재 동양대박물관(관장 이한상)은 3월 이후 부산지방국토관리청 의뢰를 받아 국도 5호선 확장공사구간에 포함된 안동시 서후면 저전리 일대를 발굴조사한 결과 2천600년 전 이상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청동기시대 인공 연못을 포함한저습지 유적을 발굴했다고 31일 발표했다.
현재까지 조사 결과 이 저수지는 자연 수로나 작은 하천이 위치한 계곡지대에 평면 장방형으로 파서 만든 인공 연못으로 드러났다.
이 연못은 전체 길이(남북) 약 50m, 최대 너비(동서) 15m에 이르고 있다.
기반토를 약 45-50도 기울기로 파냈으며 현재 지표 기준 최대 깊이는 2m 이상이다.
바닥은 약간 굴곡이 있으나 편평한 편이며 바닥면에서 이보다 선행하는 자연수로가 있었음을 엿보이는 흔적이 드러났다.
물이 연못으로 유입되는 입수구는 너비 약 3m 정도이며 낮은 쪽으로 내려가면서 차츰 넓어지다가 남서쪽 모서리는 L자 모양으로 각이 져 있다.
동남쪽 모서리 부분에는 너비 2m 가량 되는 출수구(出水口. 수량을 조절하는 부분)가 마련돼있다.
이 출수구에서 연결되는 수로는 낮은 쪽으로 활 모양 선을 그리고 있다. 저수지와 출수구 사이에는 나무로 만든 보(洑) 시설이 존재했던 흔적을 강하게엿보이고 있으나 범람으로 인해 다듬은 말목 등의 목재는 휩쓸린 채 확인됐다. 이 저수지 축조 연대는 주로 바닥면에서 확인되는 다량의 무늬없는 토기와 석기편의 특성을 보아 2천600년 전 이상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확실하며 빠르면 청동기시대 전기(기원전 8-7세기)까지 소급시킬 수 있을 것 같다고 이한상 관장을 말했다. 한국청동기시대 전공인 경남대 이상길 교수는 "이 시대에 이미 인공 연못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는 것은 획기적인 성과"라고 평가했다. 출토 유물 중 석기류에는 다듬다가 만 미완성 제품이 다수 포함돼 있고 토기 중에는 청동기시대 전기를 대표한다고 간주되는 공열문(孔列紋. 구멍뚫림 토기) 토기가 여러 점 확인됐다. 조사 결과 이 저수지는 홍수 등으로 일시에 폐기된 것으로 추정됐다. 저수지가매몰된 뒤 어느 시점에 기존 저수지 서남쪽 모서리를 따라가면서 만든 깊이 1.5m 가량 되는 인공 수로 주변에서는 토기 15점 가량이 완전히 부서진 채 확인됐다. 따라서 이 토기는 수로를 축조하면서 지낸 제사의 결과물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한상 관장은 "문헌기록에 의하면 한반도에는 서기 3-4세기 무렵에 벽골제나 의림지와 같은 저수지를 축조한 기록이 있으나 그 이전에는 저수지가 존재했는지, 존재했다면 어떤 모습이었을지 알 수 없었다"면서 "따라서 이번 유적은 그런 의문을 해소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서울/연합뉴스)
이 출수구에서 연결되는 수로는 낮은 쪽으로 활 모양 선을 그리고 있다. 저수지와 출수구 사이에는 나무로 만든 보(洑) 시설이 존재했던 흔적을 강하게엿보이고 있으나 범람으로 인해 다듬은 말목 등의 목재는 휩쓸린 채 확인됐다. 이 저수지 축조 연대는 주로 바닥면에서 확인되는 다량의 무늬없는 토기와 석기편의 특성을 보아 2천600년 전 이상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확실하며 빠르면 청동기시대 전기(기원전 8-7세기)까지 소급시킬 수 있을 것 같다고 이한상 관장을 말했다. 한국청동기시대 전공인 경남대 이상길 교수는 "이 시대에 이미 인공 연못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는 것은 획기적인 성과"라고 평가했다. 출토 유물 중 석기류에는 다듬다가 만 미완성 제품이 다수 포함돼 있고 토기 중에는 청동기시대 전기를 대표한다고 간주되는 공열문(孔列紋. 구멍뚫림 토기) 토기가 여러 점 확인됐다. 조사 결과 이 저수지는 홍수 등으로 일시에 폐기된 것으로 추정됐다. 저수지가매몰된 뒤 어느 시점에 기존 저수지 서남쪽 모서리를 따라가면서 만든 깊이 1.5m 가량 되는 인공 수로 주변에서는 토기 15점 가량이 완전히 부서진 채 확인됐다. 따라서 이 토기는 수로를 축조하면서 지낸 제사의 결과물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한상 관장은 "문헌기록에 의하면 한반도에는 서기 3-4세기 무렵에 벽골제나 의림지와 같은 저수지를 축조한 기록이 있으나 그 이전에는 저수지가 존재했는지, 존재했다면 어떤 모습이었을지 알 수 없었다"면서 "따라서 이번 유적은 그런 의문을 해소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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