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행정도시 건설을 지연시키면서 주민입주 시기가 점차 늦어지고 있다.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채 다시 고향마을로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는 주민들의 삶은 하루하루 피폐해지고 있다. 용포리 노인회관에 모여 있는 원주민들.
이주 원주민들 짓밟힌 삶
“행복도시 만든다길래 묏자리까지 내줬는데
중장비로 파헤쳐놓고 이제와서 안하겠다니…”
“행복도시 만든다길래 묏자리까지 내줬는데
중장비로 파헤쳐놓고 이제와서 안하겠다니…”
“2007년 한평생 닦아온 삶터를 떠났다. 나라가 ‘행복도시’ 만들어 고루 잘 살게 만들겠다고 해 고향을 내줬다. 평생 논밭일만 해 농토가 사라진 마을에서 할 일도 없고, 할 수 있는 일도 없다. 고향마을로 돌아갈 날만 기다리는데 이제는 안한다고 한다. 정부는 원래 이런 것이냐”
이명박 정부가 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시) 건설을 지연시키면서 삶터를 내준 주민들의 생활은 하루하루 더 피폐해지고 있다. 평생을 일한 농토를 떠나 아무런 벌이도 구하지 못한 채 기약 없는 행정도시 건설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
강남훈(70) 할머니는 충남 연기군 남면 진의리에서 한평생을 살았다. 가진 땅이 없어서 남의 땅에서 일해주며 품삯을 받았다. 가난했지만 언제나 할 일이 있었고,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았다. 2007년 11월 그는 한평생 닦아온 삶터를 떠났다. 행정도시에 자리를 내줬다. 할머니는 “나라가 ‘행복도시’를 만들어 서울이나 지방이나 고루 잘살게 만들겠다고 해, 후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고향을 내줬다”고 말했다. 친척·이웃들과 도리 없이 떨어져야 했지만, 도시가 완성되면 원주민들이 다시 모여 살 수 있는 곳도 생기고, 영세민들을 위한 임대아파트도 마련된다는 데 안도했다. 수용 보상금으로 2500만원을 받았다.
멀리 떠나지 못해 인근 금남면 용포리로 자리를 옮겼다. 전세금은 3000만원이었다. 빚을 냈다. 행정도시가 들어설 연기군 일대는 대부분 수용돼 집들은 많지 않았고, 가격은 오를 대로 올라 있었다. 평생을 밭일만 해온 할머니는 농토가 사라진 마을에서 할 일도 없고, 할 수 있는 일도 없다. 할머니는 “행정도시가 들어오면 떼(잔디)를 깔거나, 꽃을 심거나, 행상 일을 해서라도 벌어먹을 수 있을 텐데 지금은 하루하루가 고역”이라고 말했다.
남면 종촌1리에서 한평생을 보낸 조정행(74) 할머니도 2007년 2월 금남면 용포리로 왔다. 이사 오고 15개월이 지난 지난해 5월 남편을 잃었다. 노환에 신경성 질환과 우울증 등이 겹쳐서였다. 남편은 “이렇게 살 수는 없다. 빨리 고향 마을로 돌아가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9년 전 남편은 고향집 뒷산 자락에 묏자리를 마련했다. 부부가 함께 누울 자리였다. 150만원을 들여 삽차를 불러 땅도 파놓았다. 그 자리도 내줬다. 지금 그 산자락은 중장비에 밀려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할머니는 이야기를 하는 동안, 이를 악물며 울음을 참았다.
현재 용포리에는 행정도시 건설로 고향 마을을 내준 원주민 120여명이 살고 있다. 논밭과 산이 사라진 작은 시골 마을에서 이들이 돈벌이를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버는 돈이 없으니, 쓸 돈도 없다. 박종순(71) 용포리 노인회장은 “이들 가정의 가스비는 매달 평균 2000원이 안 된다”고 말했다. 가스비 기본요금은 1000원 정도다. 가스비가 2000원이 안 된다는 것은 음식을 조리해 먹거나, 난방을 하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정부 정책은 모질고도 가혹하다. 이종희(75) 할아버지는 “행정도시는 우리가 만들어 달라고 한 것이 아니다. 정부가 만든다고 해서 고향을 내주고 나니 이제는 다시 안 하겠다고 한다. 정부 정책이 원래 이런 것이냐”고 말했다. 마을이 흩어진 곳마다 파헤쳐진 산과 땅은 지천으로 붉고, 주민들의 시름은 깊어지고 있다. 연기/글·사진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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