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주(61) 부산지법 부장판사
‘대구지하철참사’ 위로시집 낸 고종주 판사
“다만 한 순간만이라도 부족한 나의 글로 하여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올해 초 아내 또는 성전환 여성에 대한 강간죄를 처음으로 인정한 판결을 내려 주목을 받은 부산지법 고종주(61·사진) 부장판사는 최근 대구지하철 참사 희생자들을 위로하는 연작시를 담은 시집 <대구지하철 중앙로역에서>(부산대출판부)를 펴낸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그는 2003년 2월에 일어난 대구지하철 방화 참사 뒤 대구변협회지의 원고 청탁을 받곤 “가슴 속에 화인처럼 박혀 있던 사고가 마치 봇물 터지듯 쏟아진 위로의 메시지로 모습을 바꿔 나를 덮쳤다”며 연작시를 쓰게 된 배경을 말했다. 이 시집에는 대구지하철 참사 관련 연작시 4편을 포함해 ‘이웃들에게 전하는 사랑의 메시지이며 편지’라고 스스로 그가 표현한 자작시 88편이 함께 실려 있다. 끌부분에는 전문가의 평론 대신 그가 가장 아끼는 세 딸이 아빠의 시를 읽고 느낀 감성을 표현한 글들이 ‘긴 생각 짧은 편지’라는 제목으로 소개돼 있다.
대학 재학 때 경남 진주 개천예술제에서 시로 입선했던 ‘문학청년’이었던 그는 2003년 8월 아침 고향 남해에서 부산행 시외버스를 타고 가던 중 “섬광과도 같이 삶의 크나큰 위로이자 은총으로 찾아온 시’를 맞닥드린 뒤 본격 시작활동을 시작해 이듬해 첫 시집 <우리 것이 아닌 사랑>을 펴냈다. 그는 올해 1월과 2월에는 “강간죄의 보호법익은 여성의 ‘정조’가 아닌 인격권에 해당하는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논지로 아내와 성전환 여성에 대한 강간죄를 우리나라 재판사상 차음으로 인정한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그는 재판과 시 쓰기의 관계에 대해 “언어를 표현수단으로 하면서 설득과 감동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궤를 같이 한다”며 “좋은 시가 예술작품으로서의 향기를 내듯이 잘 된 재판은 예술로서의 재판”라고 말했다. 부산/신동명 기자 tms1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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