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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 정보 이용법·전자발찌 착용 강화방침
범인 색출 쉽게하고 재범방지 효과 있지만
기본권 침해·국가형벌권 과잉 부작용 살펴야
범인 색출 쉽게하고 재범방지 효과 있지만
기본권 침해·국가형벌권 과잉 부작용 살펴야
‘나영이(가명) 사건’의 충격파 속에 디엔에이(DNA) 정보 채취, 전자발찌 착용 확대, 공소시효 적용 중단, 가석방 배제 등 굵직한 대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정부는 어린이 대상 성범죄를 발본색원한다는 목적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형벌제도의 근간을 흔들 사안들이 밀어붙이기 식으로 추진돼, 기본권 침해와 국가 형벌권의 지나친 팽창 등 여러 부작용이 예상되고 있다.
■ 일사천리로 ‘숙원사업’ 해결 지난 20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디엔에이정보 이용법’은 참여정부 때 법무부가 국회에 제출했다 폐기당한 법안 내용을 거의 그대로 담고 있다. 당시 법안과 이번 법안을 비교해 보면, 법원의 영장에 의해 유전자 정보를 채취해야 한다는 내용 외에는 별로 달라진 게 없다. 법안은 방화·살인·성범죄 등 12개 유형의 범죄로 구속된 피의자나, 같은 범죄로 형이 확정된 피고인의 동의를 얻거나 법원의 영장을 발부받아 유전자 정보를 채취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당시 유전자 정보 채취 법안은 인권단체들의 강한 반발로 좌초된 측면도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나영이 사건’이 몰고 온 파급 효과 때문에 국회 통과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범정부적인 법안인데다 여대야소 상황이라는 점, 야당도 무조건 반대 입장을 취하기 곤란하다는 사정이 그런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정부는 전자발찌 제도도 시행 1년여 만에 착용 기간 상한을 현행 10년에서 30년으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당시 법무부는 이중처벌 논란 등에 대해, 상습 성폭력범이나 어린이 대상 성폭력범에 한정돼 인권침해 소지가 최소화된다고 설명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에 살인·강도·방화를 대상 범죄에 포함시켜, 이런 설명이 임시방편에 불과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결국 법무부 등은 강력범에 대한 엄벌 분위기를 타고 ‘숙원사업’을 손쉽게 해결하고 있는 셈이다.
■ 인권침해 등 부작용 가능성 무시 전문가들은 이런 제도들이 어느 정도 범인 색출을 쉽게 하고 재범 방지 효과를 거두리라는 데 동의한다. 그러나 형벌제도의 근간을 바꾸고, 정부와 시민의 관계에 변화를 가져올 사안들에 관해 인권침해 등 부작용을 고민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대상에서 벗어난 범죄와의 형평성, 과잉 처벌 문제도 따른다.
‘디엔에이 정보 이용법’은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도 수사 단계에서의 디엔에이 채취 허용, 검찰과 경찰의 이중 관리, 반영구적 보존 등 갖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런데도 대상 범죄를 12개로 지정해, 죄질이 극단적으로 나쁜 ‘나영이 사건’을 빌미로 생체 정보를 이용한 감시를 일반화하려 한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정부는 연간 3만명의 유전자 정보가 채취될 것으로 예상한다.
한 부장판사는 “채취 대상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본다는 점에서 무죄추정의 원칙 등에 위배될 수 있기 때문에 최소 범위로 제한할 필요성도 있다”며 “재범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체포·감금죄나 상대적으로 가벼운 절도죄 등은 제외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국회도 2006년 검토보고서에서 “12개 범죄가 다른 범죄보다 재범률이 높다는 합리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유전자정보 관리 기관을 일원화한 외국과 달리 검경이 이원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에 대해서도 ‘중복 관리의 비효율성, 유출 위험 가중’ 등의 우려가 많다. 스웨덴 등에서는 ‘석방 후 10년 ’ 등으로 보존 연한을 지정했지만, 우리 정부 법안은 유죄 확정자는 사망할 때까지 보존하도록 해 지나치다는 논란도 일고 있다. 전자발찌 착용 연한과 부착 대상을 늘린 것을 두고서도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이런 식으로 대상 범죄를 확대하면 범죄 예방보다 형벌이 강화되는 측면이 더 커지는 부작용이 생긴다”고 말했다. 서보학 경희대 교수(형법)도 “형기를 마친 뒤에도 ‘범법 가능성이 농후한 사람’으로 점찍어 30년을 착용하게 한다는 것은 평생 감시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죗값을 치르면 정상적 사회인으로 복귀시키는 게 ‘교정의 재사회화 원칙’”이라고 말했다.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인권법)는 “기본권 침해 가능성이 있는 제도를 시행하려면 범죄 예방에 얼마나 효과적인지를 국가가 입증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효과를 검증하지 않고, 손쉬운 법 개정에만 매달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유전자정보 관리 기관을 일원화한 외국과 달리 검경이 이원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에 대해서도 ‘중복 관리의 비효율성, 유출 위험 가중’ 등의 우려가 많다. 스웨덴 등에서는 ‘석방 후 10년 ’ 등으로 보존 연한을 지정했지만, 우리 정부 법안은 유죄 확정자는 사망할 때까지 보존하도록 해 지나치다는 논란도 일고 있다. 전자발찌 착용 연한과 부착 대상을 늘린 것을 두고서도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이런 식으로 대상 범죄를 확대하면 범죄 예방보다 형벌이 강화되는 측면이 더 커지는 부작용이 생긴다”고 말했다. 서보학 경희대 교수(형법)도 “형기를 마친 뒤에도 ‘범법 가능성이 농후한 사람’으로 점찍어 30년을 착용하게 한다는 것은 평생 감시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죗값을 치르면 정상적 사회인으로 복귀시키는 게 ‘교정의 재사회화 원칙’”이라고 말했다.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인권법)는 “기본권 침해 가능성이 있는 제도를 시행하려면 범죄 예방에 얼마나 효과적인지를 국가가 입증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효과를 검증하지 않고, 손쉬운 법 개정에만 매달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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