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통위반 전문신고꾼은 진실을 보여주는가. 신고꾼은 마음만 먹으면 사진을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다. <한겨레21> 탁기형 기자.
[분석] ‘교통법규위반 신고보상제’ 재도입 논란을 둘러싼 속사정
보상금을 노리고 교통법규 위반 차량을 사진 찍어 신고하는 이른바 ‘카파라치’. 지난 2001년 3월 도입돼 1년10개월 동안 실시되다 사라진 ‘교통법규위반신고보상’ 제도가 다시 논란에 휘말리고 있다. 대한손해보험협회(이하 손보협)가 이 제도를 다시 도입하자며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뒤의 일이다.
판세는 일단 손보협 쪽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인터넷에서의 반응은 7대3 정도로 ‘반대’가 압도하고 있다. 이 제도를 운영해야 할 경찰도 시큰둥하다. 하지만 손보협은 자신들이 추진 중인 제도가 정확히 알려지면 여론전에서 불리하지만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
네티즌 반발의 주된 이유는 ‘카파라치’에 대한 부정적 기억에서 비롯된다. 신고보상금제가 실시된 2001년 3월~2002년 12월 사이 운전자들의 감정이 폭발한 건 이 제도가 안전과 하등 상관없이 전문 카파라치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피해의식이 자리잡으면서부터다. 이 기간 동안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인 전문 카파라치의 보상금 총액은 1억7천만원이었다.
한 사람 보상금이 최고 1억7천…카파라치에 대한 생생한 기억들
그러나 손보협은 이런 직업적인 카파라치가 다시 등장할 가능성은 없다고 못박는다. 손보협은 이번에는 교통법규 위반차량 신고자의 자격과 수를 제한하고, 촬영 장소도 교통사고가 잦은 곳으로만 한정하며, 보상금도 건당 2000~3000원이 아니라 500~1000원 정도의 실비만 주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이득로 손보협 자동차보험부장은 “이런 식으로 제도를 운영하면 돈을 노리고 무작위로 사진을 찍는 전문 카파라치는 생기지 않을 것”이라며 “신고자도 일정기간 교육을 거쳐서 건전한 자원봉사자인 ‘시민감시단’으로 운영하면 된다”고 말했다. 또 “촬영 장소에 ‘교통위반을 촬영할 수 있다’는 안내표지까지 세워두면 누군가 거리 아무데서나 무작위로 사진을 찍은 데서 오는 불신감도 사라질 것”이라며 “그런데도 교통법규를 위반하겠다는 사람까지 보호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고 덧붙였다.
그러나 손보협의 기대만큼 신고보상금제에 대한 운전자들의 태도가 달라질지는 쉽게 장담할 수 없다. 경찰공무원이 직접 단속하면 될 일을 민간인이 감시해서 신고하도록 하면 될 일이고, 그 돈으로 차라리 도로구조를 개선하거나 안전시설을 확충하는 게 낫지 않으냐는 게 이 제도 부활에 반대하는 네티즌들의 주장이다.
경찰청의 논리도 마찬가지다. 경찰청 관계자는 “국민의 안전만 생각하면 차에 애완견을 태우는 것까지 단속해야 한다”며 “규제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여론이 나쁜 제도를 굳이 도입하는 것도 부담이다. 이 관계자는 “국민의 교통문화를 끌어올리는 수단은 많은데 사회갈등이 커서 없앤 제도를 굳이 다시 도입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보험업계 “사고감소 효과 탁월…보상금 낮추고 촬영장소도 제한”
손보협에서도 강력한 반박논리는 있다. 한해 평균 교통사고 사망자는 6천~7천명에 이르는 현실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수준이다. 이득로 부장은 “교통사고는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인데 하루라도 빨리 사망자를 줄여야 하지 않겠느냐”며 “사회적 비용도 연간 10조원에 이르기 때문에 국민이 반대하더라도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손보협은 신고보상금제의 효과가 확실히 검증됐음을 강조한다. 경찰청이 신고보상제를 처음 도입한 2001년 3~12월에 100곳을 임의 선정해 조사한 결과 교통사고 발생 건수는 45.7%, 사상자수도 47.5%나 줄었다는 것이다. 단속 경찰을 늘리기 힘든 현실도 손보협의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경찰청 관계자도 “어디서 찍을지 모르기 때문에 법규위반 억제효과는 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월드컵을 앞두고 안전띠 착용 운동이나 ‘일본에 앞서자’는 국민질서 의식 변화 등 다른 변수도 있었기 때문에 신고보상금제의 효과로 곧바로 연결하기는 어렵다”고 단서를 달았다.
하지만 손보협 처지에서든 경찰 처지에서든, 이 제도 도입에 대한 태도를 가르는 결정적 변수는 역시 돈이다. 보상금 비용은 누가 댈 것이며, 이 제도 도입에 따른 경제적 이익은 누가 챙길 것인가 하는 문제다.
먼저 비용 문제를 보자. 손보협은 “당연히 경찰이 부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과거에도 그랬으니 달리 생각할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과거 2년 동안 이 제도를 시행할 때 든 정부예산은 모두 142억원으로, 만만치 않은 규모이지만, 보상금을 줄이고 촬영지역으로 제한하면 한 해 30억~40억원이면 충분하다는 계산도 내놓는다. 손보협은 그 돈을 낼 여력이 없다며 우는 소리도 마다지 않는다.
결정적 변수는 ‘돈’…부담은 누가 지고 이익은 누가 챙길 것인가
하지만 경찰이라고 해서 당장 30억~40억원을 딴주머니에 차고 있을 리는 없다. 이미 폐지된 관련예산을 다시 편성하려면 예산당국과 옥신각신 줄다리기를 해야 하는 처지다. 더구나 보상금은 국민세금에서 나오는 것인데, 국민이 강하게 반대해서 폐지된 제도를 다시 도입하는 건 아무리 효과가 뛰어난 제도라 해도 경찰로서도 피하고 싶어할 만하다.
그렇다면 이 제도를 도입해서 발생하는 이익은 누구 앞으로 돌아갈까? 국민세금으로 운영되는 제도로 교통사고가 줄어 보험업계로 이익이 돌아가는 건 옳은 일일까? 어쨌든 손보협이 신고보상제 도입을 추진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손해보험 회사들의 주가가 올랐다는 건 영악한 시장이 이 제도의 수혜자로 보험업계를 꼽고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
손보협은 사고율 감소로 얻어지는 이익을 보험사가 독차지하는 건 아니라고 강조한다. 사고율이 낮아지면 보험료도 낮아져 가입자에게 이익이 돌아간다는 얘기다. 손보협 말대로라면 국민생명도 지키고 보험사와 가입자가 이익도 나눠갖는 일석삼조의 셈법인 셈이다.
하지만 보험업계의 속사정을 잘 아는 쪽에서는 이 제도가 보험업계와 가입자의 ‘윈-윈’은커녕, 보험업계의 배만 불려줄 거라고 주장한다. 보험소비자연맹은 손보협의 제도 추진 계획이 알려지자 강력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운전자 처지에서는 국민간 불신을 조장하고 범칙금과 보험료 증가라는 이중부담을 안겨주는 반면, 보험업계는 사고율이 떨어지면서 보험급여(보험사가 사고 운전자에게 지급하는 돈)를 아낄 뿐 아니라 보험료 수입 증대라는 이중 이익을 챙긴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단속 늘수록 보험사 수입도 크게 증가…운전자 의식은 문제없나
보험소비자연맹에 따르면, 2000년 한 해 법규위반 차량단속건수는 1천만건 정도였으나, 이 제도를 시행한 2001년과 2002년엔 한 해 1700만건으로 치솟았다. 이런 결과는 경찰의 범칙금 수입 증가에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다. 교통법규 위반에 대해서는 자동차보험료도 할증된다. 그동안 무면허 음주 뺑소니는 10%가 할증되고, 2차례 신호위반 중앙선침범 속도위반 땐 5~10%가 할증되던 것이 내년 9월부터는 최고 30%까지 높아진다. 법규위반 적발 증가에 따른 보험업계의 이익이 세 배 정도 늘어나게 돼있는 것이다.
보험소비자연맹은 사고율이 내려가면 보험료도 내려간다는 보험업계의 주장도 반박한다. 2002~2003년 사고율과 사상자수가 50% 가까이 내렸으나, 같은 기간 운전자의 보험료는 오히려 올랐다는 얘기다. 손보협이 이 기간 동안 신고 보상금으로 경찰청에 22억원을 지원한 사실도 보험업계가 이 제도로부터 적지 않은 경제적 이익을 기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이들은 주장하고 있다.
어쨌든 손보협은 신고보상금제를 다시 도입하는 데 매우 적극적이다. 현재 기초 자료를 만들고 국회에 건의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 교통연대 등의 시민단체도 함께 하고 있다. 손보협이 공익집단이라면 교통사고를 줄이려는 이들의 공익적 노력은 참으로 헌신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손보협은 보험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익단체라는 사실과, 이 제도 도입에 따른 경제적 이익이 막대하다는 사실 모두 매우 명백하다. 물론 이 제도가 없더라도 운전자들이 철저히 법규를 지키기만 한다면 이런 논쟁 자체가 불필요하겠지만 말이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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