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용현(59) 교수
강원대 디자인학과 북한 주제로 졸업작품전 열어
금강산 1만2천봉이 색색의 양념통이 돼 식탁 위에 놓였다. 금강산의 산세와 구름도 병따개와 양념접시 디자인 속으로 쏙 들어와 앉았다. 평양을 달리는 전차 차체엔 북한이 자랑하는 집단체조의 카드섹션 장면이 화려하게 수놓였다. 7일 서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 가면 현실을 뒤집는 발랄한 상상에 잠시 빠져볼 수 있다. 강원대 디자인학과의 20회 졸업작품전 ‘북한을 디자인한다’가 역사 안 메트로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왜 디자인의 대상으로 북한을 택했을까? 디자인학과장을 맡고 있는 남용현(59·사진) 교수는 “디자인이란 무언가를 새롭게 만드는 행위”라며 “옛것과 새것의 극명한 차이를 드러낼 수 있는 대상을 찾다보니 ‘북한’이 나왔다”고 말했다. “요즘은 남쪽에서도 북한 제품을 접할 기회가 많죠. 그러다보니 좀 디자인이 옛스러운 걸 대하면 ‘북한제’ 같다고들 쉽게 말하잖아요. 디자인의 눈길이 향해야 할 곳은 결국 이런 낡은 것의 변화에 있다고 봅니다.”
사회 진출을 앞둔 예비 디자이너들의 상상력은 북한산 제품이 담긴 용기의 약간 촌스런 디자인에 세련된 현대적 감각을 불어넣었다. 최수동씨는 신의주화장품공장에서 생산되는 화장품 ‘봄향기’를 크리스탈 풍의 현대적 용기에 새롭게 담았다. ‘강계산 포도술’과 ‘다래술’도 쭉 빠진 새 병에 담기니 한층 깔끔해진 느낌이다. 북한의 국가 이미지를 현대적인 느낌으로 바꿔놓은 디자인도 나왔다. 교과서와 여권, 고려항공의 탑승권이 바랜 느낌의 때깔을 벗고 디지털 감각으로 새롭게 변신했다.
접경지역인 강원도에 있는 대학이란 점도 북한에 관심을 두게 한 요인이다. 남 교수는 “2년 전에도 비무장지대(DMZ)를 주제로 졸업전을 했다”며 “이번에도 남북관계 상황만 괜찮았으면 금강산에서 작품전을 하려고 구상했는데 아쉽다”고 말했다.
“북한도 디자인의 문제점을 모르지는 않을텐데 아마도 그것보다 더 시급한 문제가 많다보니 이런데 관심을 돌릴 여유가 없는 것 아닐까요?”
남북관계 경색의 여파로 남쪽 내부의 관심이 줄어든 것도 안타까운 대목이다. “통일부에도 자료를 보냈지만 전화 한 통 없었어요. 다시 이런 기회를 갖게 될 때는 디자인의 실제 적용을 위한 북쪽과의 소통도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는 상황이 돼 있다면 좋겠어요.”
9~13일엔 강원대의 갤러리 백령(나래관 2층)에서 관람할 수 있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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