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딸로 알고 키운 자식이 남의 자식으로 밝혀졌다 해도, 아이 양육비나 교육비를 아내한테 받아낼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ㄱ(55)씨가 ㅎ(53)씨한테 “당신의 아이를 가졌다”는 말을 들은 것은 1981년 말. 당시 유부녀였던 ㅎ씨는 딸을 낳은 뒤 남편과 이혼하고 ㄱ씨와 동거를 시작했다. 이들은 86년 7월 혼인신고를 하면서 아이를 친생자로 출생신고했고, ㄱ씨는 99년 아내와 협의이혼 절차를 밟기 전까지 내내 딸아이를 친자식으로 알고 키웠다. 그런데 그는 이혼 과정에서 딸이 아내의 전남편 호적에 올려진 사실을 알게 됐다. 그해 7월 친자감정 결과 친딸이 아니라는 통보를 받았고, 2001년 9월 법원에 친생자관계 부존재 확인소송을 내 이듬해 6월 승소했다.
그러나 서울고법 민사3부(재판장 최은수)는 1일 ㄱ씨가 “전남편의 아이를 내 딸인 것처럼 속이는 바람에 입은 정신적 피해와 아이에게 들어간 양육비·교육비를 배상하라”며 아내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91년 개정된 민법에 따라 배우자의 4촌 이내 혈족도 인척관계로 바뀌었으므로, ㄱ씨에게는 배우자의 자녀를 부양할 의무가 있어 이 돈을 돌려받을 수는 없다”고 밝혔다. 또 “아내한테 당한 정신적 고통에 대해서는 위자료를 받을 수 있지만, 친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99년으로부터 3년이 지나 소송을 냈기 때문에 이미 소멸시효가 지났다”고 덧붙였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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