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최부잣집 12대손 최준·윤 형제 ‘눈길’
홍명희 집안도 ‘조부는 친일·부친은 자결’
홍명희 집안도 ‘조부는 친일·부친은 자결’
‘친일인명사전’에 담지못한 굴곡진 가족사
순종이 한-일합병 조약의 체결을 공표한 1910년 8월29일. 당시 충남 금산군수 홍범식은 목을 맸다. 그는 이완용·이용구·송병준 등 ‘을사 5적’이 나라를 내다 판 친일·반역 행위를 통탄하며 목숨을 던지며 저항했다. 그는 죽기 전 “죽을지언정 친일을 하지 말고 먼 훗날에라도 나를 욕되게 하지 말라” 는 말을 남겼다. 홍범식은 1962년 독립유공자(독립장)로 인정됐고, 국가보훈처는 ‘금산군수로 재임 중 경술합방 소식을 전문하고(듣고) 목을 매어 순국하였음’이라고 그의 공적을 짧게 기록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 홍승목은 아들이 자결하고 불과 2개월이 지나 중추원 찬의(고등관에 해당)에 올랐다. 그는 중추원에서 12년간 조선총독부의 자문역을 맡았고, 1912년 8월엔 한국병합기념장을 받았다. 이후에도 1차 대전 참전 일본 군인과 가족을 위로하는 ‘경성군인후원회’에 돈을 내거나, ‘조선물산공진회’의 후원조직에서 활동했다.
이 비극적인 부자의 운명은 대물림됐다. 일본에서 유학중이던 홍범식의 큰아들은 아버지의 자결 소식을 듣고 유지를 이으려 귀국했다. 그는 1919년 3·1운동 등에 참여해 여러 차례 감옥에 갔고, <동아일보> 편집국장과 <시대일보> 사장을 지내며 고초를 겪었다. 1928년부터는 <조선일보>에 10여년간 민중소설 <임꺽정>을 연재했다. 홍범식의 큰아들이었던 벽초 홍명희는 “나는 홍범식의 아들, 애국자다”라고 얘기하는 것을 자랑거리로 여겼다고 한다.
<친일인명사전>은 홍승목을 “경술국치 때 자결한 군수 홍범식이 그의 아들이며 신간회 부회장을 지낸 독립운동가이자 소설 <임꺽정>의 작가인 전 북한 부수상 벽초 홍명희가 손자”라고 기록했다.
지난 8일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을 내놓으면서, 여기에 담기지 못한 한국 현대사의 굴곡 많은 사연들이 알려지고 있다.
‘한국 최고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꼽히는 경주 최부잣집 12대손 최윤은 중추원 참의(지금의 국장급)를 지내 <친일인명사전>에, 그의 형 최준은 상해임시정부에 막대한 군자금을 대 독립유공자로 기록된 경우다. 동생이 ‘악역’을 맡아 형의 독립운동을 의심받지 않게 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들의 사촌 처남이었던 박상진은 대한광복회 총사령관으로 독립운동을 하다 체포돼 사형됐다.
일제강점기 ‘정미 7적’ 가운데 한명으로, 귀족 신분인 ‘자작’의 작위를 받은 이재곤은, 그의 셋째 아들 이관용이 1919년 국제사회주의자회의에 한국사회당 대표로 참석해 ‘한국독립 승인 요구안’을 낸 점이 인정된 독립유공자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후작(최고 귀족에 해당함)이었던 이철주는 보장된 부와 명예를 버리고 독립운동을 하다 징역형을 살았고, 자작 민영소의 큰손자 민병증은 독립운동을 하다 잡혀 습작(귀족 신분을 이어받는 것)의 자격을 상실했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쓴 주요섭은 2004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지만, 그의 형 주요한과 동생 주영섭은 시와 연극으로 침략 행위를 감쌌다.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은 11일 “일제 강점기가 만들어낸 아픈 역사들이 지금도 진행형으로 존재하고 있다”며 “이런 역사의 굴레에 얽힌 안타까운 사연들도 책으로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일제강점기 ‘정미 7적’ 가운데 한명으로, 귀족 신분인 ‘자작’의 작위를 받은 이재곤은, 그의 셋째 아들 이관용이 1919년 국제사회주의자회의에 한국사회당 대표로 참석해 ‘한국독립 승인 요구안’을 낸 점이 인정된 독립유공자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후작(최고 귀족에 해당함)이었던 이철주는 보장된 부와 명예를 버리고 독립운동을 하다 징역형을 살았고, 자작 민영소의 큰손자 민병증은 독립운동을 하다 잡혀 습작(귀족 신분을 이어받는 것)의 자격을 상실했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쓴 주요섭은 2004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지만, 그의 형 주요한과 동생 주영섭은 시와 연극으로 침략 행위를 감쌌다.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은 11일 “일제 강점기가 만들어낸 아픈 역사들이 지금도 진행형으로 존재하고 있다”며 “이런 역사의 굴레에 얽힌 안타까운 사연들도 책으로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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