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주 전 KBS사장
법원 “대통령 해임재량권 남용, 위법”
해임 전 임기 곧 만료 사장복귀 힘들어
해임 전 임기 곧 만료 사장복귀 힘들어
이명박 대통령이 정연주(63·사진) 전 <한국방송> 사장을 해임한 처분은 위법하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재판장 정형식)는 12일 정 전 사장이 이 대통령을 상대로 낸 해임처분 무효 청구소송에서 “해임처분을 취소한다”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이번 판결로 ‘방송 장악을 위해 정부가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야당과 일부 시민·사회단체 등의 비판이 힘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해임처분은 대통령에게 주어진 한국방송 사장의 해임에 관한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위법이 있다고 볼 여지가 있다”며 “2008년 8월11일 정 전 사장을 해임한 처분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이어 재판부는 ‘국세청과의 세금소송을 조정으로 마무리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해임 사유에 대해 “한국방송이 합리적인 과세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오랫동안 국세청과 협의했고, 1년 이상 내·외부 자문을 거쳐 조정안을 마련한 점에 비춰 보면 이를 해임 사유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재판부는 해임처분 절차를 두고도 “정 전 사장에게 처분 내용을 사전에 통지하거나 소명기회를 줬다고 볼 증거가 없고, 해임처분의 법적 근거나 구체적 사유를 전혀 제시하지 않는 등 절차상으로도 위법하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어 “한국방송 사장의 임기제는 공영방송의 독립성·공정성·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해임처분의 기준을 엄격하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한국방송이 계속해서 적자를 낸 점에 대한 정 전 사장의 책임을 인정할 수 있고, 방송 관련 법령에 사장 해임 사유에 대한 구체적 규정이 없다”며 “(대통령의 처분을) 중대하고 명백한 하자로 볼 수 없어 ‘무효’가 아닌 ‘취소’ 판결을 한다”고 설명했다.
판결이 난 뒤 정 전 사장은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후 절차적 민주주의가 위협받았는데 이에 경종을 울리는 판결”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 전 사장은 애초 임기 만료일(11월23일)이 얼마 남지 않았고, 선고 직후 정부 쪽이 곧바로 항소해 사장 복귀는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민주언론시민연합 등 언론단체는 “정 전 사장을 내몰았던 청와대·방통위·감사원·국세청 등은 정치적·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등 야당도 “정부는 법과 절차를 어기며 일방독주했던 수많은 정책들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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