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수험장 밖 풍경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전국 공동행동’ 회원들이 12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경쟁과 입시 고통의 벽을 허무는 상징의식’을 펼치고 있다. 이들은 “현재의 수능시험을 대입자격고사로 바꿔 대학을 평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종찬 선임기자 rhee@hani.co.kr
원주선 재수생 유서 남기고 자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치러진 12일 서울 종로구 필운동 배화여고 정문 앞 바닥에는 이른 새벽부터 대자보 하나가 붙었다. ‘학문은 좁지만 풍문인은 날씬하다.’ 이날 수능을 치르는 선배들의 선전을 기원하며 풍문여고 2학년 학생 4명이 응원 문구를 붙인 것이다. 대학으로 가는 길은 좁지만 풍문여고 학생들은 충분히 합격할 것이라는 뜻이다. 이들은 오전 8시10분에 정문이 닫히자 학교 쪽을 향해 큰절을 올리기도 했다.
바로 옆에선 서울 계성여고 학생 20여명이 이에 맞서 열띤 응원 경쟁을 벌였다. 이들은 ‘정답만 콕! 계성 힘내세요’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선배들에게 일일이 따뜻한 코코아를 건넸다.
그러나 당사자인 수험생들은 좀처럼 긴장을 풀지 못했다. 계성여고 3학년 박지현(18)양은 “긴장이 돼서 잠을 제대로 못 자고 뒤척였다”며 걱정스러워했다. 또다른 수험생은 불안한 마음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지 부모님의 옷깃을 잡은 채 애를 태웠다. “엄마, 무서워 어떻게 해. 숨이 안 쉬어져.”
학부모들은 학생들의 등을 토닥여 고사장으로 들여보냈지만, 학생들 못지않게 긴장감을 감추지 못했다. 김아무개(45)씨는 “아이가 막상 들어갈 때가 돼서 ‘떨린다’고 하기에, ‘힘내라’고 말해줬다. 그런데 정작 나도 너무 떨린다”고 했다. 학부모 김자혜(46)씨도 “50일 전부터 매일 새벽기도를 다니는데 실수만 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며 초조해했다.
이날 전국에선 수험생들이 시험을 치르지 못할 뻔한 상황이 곳곳에서 연출됐다. 경찰청은 “차를 잡지 못하거나, 엉뚱한 고사장을 찾아간 수험생들을 경찰이 긴급 호송해준 경우가 1098건이나 됐다”고 밝혔다.
경기 일산에서는 항암치료를 받은 뒤여서 휠체어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김아무개 학생을 경찰이 집을 찾아가 고사장까지 데려다주기도 했다. 서울 구로구에선 수험생 아들을 차에 태우고 가던 박아무개씨가 경찰 단속에 걸려 벌금 미납으로 수배된 사실이 드러났지만, 박씨가 “아들을 수험장까지만 조용히 데리고 가게 해달라”는 부탁을 경찰이 받아들인 일도 있었다. 서울 금옥여고에선 고사장 입실 마감시간 직전, 한 시민이 소형 트럭에 6명의 수험생을 태우고 고사장에 들어왔다. 시험 감독을 맡은 교사들이 구둣발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운동화를 신은 경우도 많아 눈길을 끌었다.
한편 이날 새벽 5시8분께 재수생 박아무개(19)군이 강원도 원주시 단구동의 한 아파트 20층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끊은 안타까운 일도 벌어졌다. 박군의 아버지(53)는 경찰에서 “방의 창문이 열린 상태에서 아파트 바닥에 아들이 떨어져 있었다”며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적힌 종이가 있었다”고 밝혔다. 경찰은 재수생이던 박군이 시험에 대한 압박감 때문에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숨진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김민경 이경미 기자, 전국종합 salmat@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