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적 역사가 이덕일 씨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일인명사전 등재를 비판한 것 때문에 논란이 되고 있다.
한겨레에 연재글을 올릴 당시에도 이덕일 씨의 사관을 편견을 가지고 바라보는 사람들이 매우 많아 나름대로 이덕일 씨를 변호하고자 했던 터라 이번 사건은 좀 곤혹스럽기까지 하다.
특히, 1차 사료 부재의 문제를 지적한 점은 내가 봐도 이덕일 씨 답지 못한 행동이었다. 독립군과 전투한 1차 사료가 없다는 주장은 실증주의적 관점으로서 이덕일씨가 그동안 줄곧 비판해 왔던 주류사학의 입장일 뿐이다. 예컨대, 이덕일 씨 자신이 주장한 정조 독살설에 대해 주류사학자들은 사료에 의해 입증되지 않는 음모론적 상상력의 발로라고 비판했다. 자신이 공격당한 무기로 자신을 비호한다는 점에서 이덕일 씨는 논점의 일관성을 일탈했다. 1차 사료 문제는 들먹이지 않는 것이 오히려 낳았다. 구질구질한 변명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물론, 일본군(만주군) 장교로 복무했다는 사실만으로 친일분자라고 낙인찍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사실이 친일행위의 개연성을 높여주는 것은 확실하다. 이런 경우에 다른 반대사실이 발견되지 않으면 친일로 보는 방식으로 역사적 추론이 이루어진다. 예컨대 [쉰들러리스트]란 영화의 주인공인 쉰들러는 게슈타포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지만 유대인들의 증언에 의해 사실은 그가 유대인들의 탈출을 암암리에 지원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에 그가 전범이라는 주장은 역사해석에 의해 부정된다. 마찬가지로 일본의 동아시아 침략의 첨병이었던 만주군의 장교로 활동했던 박정희는 일단 친일부역자로 보아야 하고 친일행위와 명백히 모순되는 역사적 사실이 발견될 경우에만 이러한 역사적 추론이 부정된다. 그런데 박정희가 이와 모순되는 어떤 행동을 했는가? 그가 독립운동을 지원하거나 체포된 독립운동가를 풀어준 사건이라도 발견되었는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이후에 친일역사를 청산하기 위한 진지한 노력을 기울인 적이라도 있는가?
영화 [책을 읽어주는 남자]에서 여주인공(케이트윈슬렛 분)은 독일군 자위대를 하나의 직업으로 여기고 지원 입대하여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용된 유대인들을 학살하게 된다. 그러나 그녀는 히틀러와 같은 인종주의자도 아니었고 학살을 직접 지시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단지 직업으로 여겨 자위대에 입대했으며 유대인에 대한 학살도 말단 군무원으로서 자위대의 규칙에 따르다보니 발생한 사건이었다. 영화는 여주인공을 온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모든 문제를 시대의 문제로 돌리려 하지만 현실의 전범재판소는 그녀에게 종신형에 가까운 장기징역형을 선고한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그녀가 고의로 유대인들을 학살하지 않았다는데 동의하며 전범재판소의 판결이 지나치다고 생각하지만 그녀에게 책임이 전혀 없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녀의 책임이란 다름 아니라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일상적으로 자위대에 지원하고 자위대의 규칙을 따랐다는 그 평범성에 있다. 유대인으로서 나치에 맞서 싸웠던 진보적 지식인이었던 한나 아렌트는 이를 가리켜 “악의 평범성”이라고 표현했다. 박정희가 문제가 되는 것은 일제가 만주군을 통해 독립운동을 말살하려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몰랐다는 듯이 만주군에 혈서를 쓰고 지원입대하였다는 사실 자체에 있다. 만주군이 독립군 말살하는 부대라는 사실과 일본이 침략자라는 사실을 몰랐거나 알고서도 무시했다는 점이 문제였던 것이다.
영화 [책을 읽어주는 남자]에서 여주인공(케이트윈슬렛 분)은 독일군 자위대를 하나의 직업으로 여기고 지원 입대하여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용된 유대인들을 학살하게 된다. 그러나 그녀는 히틀러와 같은 인종주의자도 아니었고 학살을 직접 지시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단지 직업으로 여겨 자위대에 입대했으며 유대인에 대한 학살도 말단 군무원으로서 자위대의 규칙에 따르다보니 발생한 사건이었다. 영화는 여주인공을 온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모든 문제를 시대의 문제로 돌리려 하지만 현실의 전범재판소는 그녀에게 종신형에 가까운 장기징역형을 선고한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그녀가 고의로 유대인들을 학살하지 않았다는데 동의하며 전범재판소의 판결이 지나치다고 생각하지만 그녀에게 책임이 전혀 없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녀의 책임이란 다름 아니라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일상적으로 자위대에 지원하고 자위대의 규칙을 따랐다는 그 평범성에 있다. 유대인으로서 나치에 맞서 싸웠던 진보적 지식인이었던 한나 아렌트는 이를 가리켜 “악의 평범성”이라고 표현했다. 박정희가 문제가 되는 것은 일제가 만주군을 통해 독립운동을 말살하려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몰랐다는 듯이 만주군에 혈서를 쓰고 지원입대하였다는 사실 자체에 있다. 만주군이 독립군 말살하는 부대라는 사실과 일본이 침략자라는 사실을 몰랐거나 알고서도 무시했다는 점이 문제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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