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엄마가 있었다.
한 엄마의 얘기는 추위가 채 풀리지 않았던 지난해 3월 말 출입하던 경찰서에서 접했다. 단순 절도 사건이었는데, 주부가 우유를 훔쳤다는 게 영 마음에 걸렸다. 자세한 얘기를 들어봤다. “남편이 아파 벌이가 없는데 3살짜리 애한테 우유, 요구르트를 먹이고 싶어 훔쳤다”고 했다. 처음부터 훔치러 간 건 아니었다. 세일할 때 사준 세제와 샴푸를 환불해 그 돈으로 사려 했지만 영수증이 없어 그럴 수 없었다고 했다. 우유 한 팩과 요구르트, 물티슈를 장바구니에 넣고 그냥 나오려던 그 엄마는 바로 마트 직원에게 붙잡혔다. 그 엄마는 그 날 서울 관악경찰서에 절도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3만2천원어치였다.
기사를 썼다. 200자 원고지로 4매가 채 안 되는 기사였다. 기사가 나간 날, 수십 통의 메일이 쏟아졌다.
“신문을 읽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넉넉한 형편은 못되나 한번이나마 우유를 실것 먹을 수 있는 비용이라도 보내고 싶습니다. 저는 이쁜 마눌님과 초등학교 자녀 둘을 두고 있는 45세 중년 가장입니다.”, “아이 키우는 엄마된 입장에서 넉넉지는 못하지만 아이 우유라도 살 수 있게끔 도와 드리고 싶어서 그러는데 이런 일이 첨이라 어떻할지 몰라 메일로 보내 봅니다. 제 나이는 40세로 기사내용의 분과 비슷한 나이라 더욱 마음이 아픕니다.”, “청주에 사는 30대 중반의 사람입니다. 저 또한 세살 먹은 딸이 있지만 애기가 먹고 싶은 걸 사주지 못하는 부모의 마음이…. 풍족하지는 않지만 남한테 싫은 소리 하지 않고 사는 저의 현실이 너무 행복해지네요. 부끄럽지만 작은 금액이라도 돕고 싶습니다.”
한참 고민을 하다 그 엄마에게 독자들의 뜻을 전했다. 조심스레 계좌번호를 받았다. 복사하기와 붙여넣기를 수십회 반복하며 답메일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한겨레신문 송경화 기자입니다. 기사가 나간 뒤에 많은 분들이 도움을 드릴 방법을 알려달라고 연락을 해오셨습니다. 기사에 나오신 어머님께선 한사코 거절을 하셨지만, '도움 받으신 만큼 나중에 잘 돼서 도움 드리면 된다'고 꼬셔서(?) 계좌번호를 받았습니다. 어머님이 부담되지 않게, 마음을 전하는 정도로 도움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 이런 기사 쓸 일이 줄어들었으면'하는 개인적인 바람을 가져봅니다. 올 봄은 조금 더 따뜻했으면 좋겠습니다. 2008. 3. 28 그 엄마는 “너무 감사해 몸둘 바를 모르겠다”고 했다. 열심히 살겠다고 했다. 애를 위해, 더 나아질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했다. 다른 엄마의 얘기는 새로운 출입처인 법원에서 들었다.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자신의 딸을 성폭행한 남편에 대해 법원에 선처를 호소한 엄마의 이야기가 11쪽짜리 판결문에 담겨 있었다. 그 엄마에게는 전 남편 사이에서 낳은 딸과 아들이 었었고, 새 남편 사이에서 낳은 갓난아기가 있었다. 새 남편이 전 남편 사이에서 낳은 딸을 성폭행한 것이었다. 법정에서 그 엄마는 “지금 저희 가족은 비참하게도 먹고, 입고, 자는 문제로 고생을 합니다. 제발 가정을 지켜주십시오. 너무 힘들어 쓰러지려 합니다.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새 출발하게 도와주세요”라고 호소했다고 판결문은 소개했다. 재판부는 그 엄마의 호소를 받아들였다. 현행법에서 감경할 수 있는 최대치인 징역 3년6월이 그 남편에게 선고됐다. 기사를 썼다. 다양한 댓글이 달렸다. “비참한 생활을 겪는 어머니의 심정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 선택은 아닌 것 같다.”, “저런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게 만든 사회보장제도를 보완할 문제지, 그 남편 형을 낮춰줘 풀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고생이 두려운 어머니 본인을 지키기 위한 이기적 판단은 아닌지 모르겠다.” 주로 그 엄마의 행동을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메일도 많이 왔다. 돕고 싶다고 했다. 충북 진천에 사는 두 자녀를 둔 가장으로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메일을 보낸다는 직장인도 있었고, 어떤 위로의 말로도 딸과 엄마의 상처를 치료할 수 없겠지만 경제적으로 작은 도움이 되고자 한다는 엄마도 있었다. 역시 고민을 했고, 그 엄마에게 뜻을 전했다. 계좌번호를 받았고, 답메일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한겨레 사회부 법조팀 송경화 기자입니다. 기사를 출고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기사가 나가니,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반응들이 쏟아졌습니다. 제 짧은 생각으로는 그런 결정을 내린 어머님을 비난해야 할지,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 가족의 사연을 통해 우리 사회가 생각해봐야 할 고민들이 더 많아졌고, 더 깊어진 것만큼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도움을 주겠다고 연락해온 분들이 많았습니다. 조심스러웠습니다. 어머님과 아이들에게 일시적으로나마 경제적 도움이 갈 수 있게 연결해드리는 게 맞는지. 메일을 보내주신 분들의 뜻을 충분히 전달했습니다. 조심스레 계좌번호를 불러주셨습니다. 관심 가져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올 겨울은 좀 더 따뜻했으면 좋겠습니다. 2009. 11. 19 그 엄마가 사회 제도 속에서 더 나아질 수 없는지 궁금했다. 기사를 쓰고 이곳저곳에 전활 돌려봤다. ‘그 일’이 일어나고 한 달 뒤 그 엄마는 관할 구청에 기초생활수급자 등록절차를 밟았다. 40만원밖에 받을 수 없었다. 전 남편 사이에서 낳은 딸과 아들은 수급대상이 되지 않았다. 구청과 보건복지부에 물어봤다. 전 남편과 모든 관계를 끊고 양육권도 혼자 책임지는 조건 하에 이혼을 했다는 그 엄마의 사연을 설명했다. 전 남편에게 경제력이 있는 것으로 확인돼 안 된다고 했다. 이혼의 양육권과 기초생활수급의 부양의무는 별개라고 했다. 지난달에 태어난 갓난아기는 수급 대상으로 등록이 돼, 이번 달부터는 69만4천원을 받게 된다고 했다. 그 엄마에게 설명을 했다.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했다. 애를 위해 열심히 살겠다고 했다. 다시 연락드리겠다고 했다. 경찰서에 입건됐던 예전의 ‘그 엄마’가 궁금했다. 오랜만에 전활 걸었다. 그 사건이 있은지도 1년 반이 지나 있었다. 애는 자라고 있었다. 남편은 여전히 아팠다. 생활은 여전히 힘들었다. 그 엄마는 “여전히, 너무, 너무 살기 힘들다”고 했다. 그 뒤 도움주시는 분은 없었냐, 시댁에선 연락 없냐, 애기는 잘 있냐 따위를 묻곤 전활 끊었다. 다시 연락드리겠다고 했다. 문득 궁금해졌다. 1년 반 뒤, 남편의 선처를 호소한 이번의 ‘그 엄마’에게 전활 걸면 어떤 얘기를 들을 수 있을까. 어떤 얘기를 나눌 수 있을까. 그 때, 전화 거는 게 두렵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전화 거는 게 두렵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참 고민을 하다 그 엄마에게 독자들의 뜻을 전했다. 조심스레 계좌번호를 받았다. 복사하기와 붙여넣기를 수십회 반복하며 답메일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한겨레신문 송경화 기자입니다. 기사가 나간 뒤에 많은 분들이 도움을 드릴 방법을 알려달라고 연락을 해오셨습니다. 기사에 나오신 어머님께선 한사코 거절을 하셨지만, '도움 받으신 만큼 나중에 잘 돼서 도움 드리면 된다'고 꼬셔서(?) 계좌번호를 받았습니다. 어머님이 부담되지 않게, 마음을 전하는 정도로 도움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 이런 기사 쓸 일이 줄어들었으면'하는 개인적인 바람을 가져봅니다. 올 봄은 조금 더 따뜻했으면 좋겠습니다. 2008. 3. 28 그 엄마는 “너무 감사해 몸둘 바를 모르겠다”고 했다. 열심히 살겠다고 했다. 애를 위해, 더 나아질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했다. 다른 엄마의 얘기는 새로운 출입처인 법원에서 들었다.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자신의 딸을 성폭행한 남편에 대해 법원에 선처를 호소한 엄마의 이야기가 11쪽짜리 판결문에 담겨 있었다. 그 엄마에게는 전 남편 사이에서 낳은 딸과 아들이 었었고, 새 남편 사이에서 낳은 갓난아기가 있었다. 새 남편이 전 남편 사이에서 낳은 딸을 성폭행한 것이었다. 법정에서 그 엄마는 “지금 저희 가족은 비참하게도 먹고, 입고, 자는 문제로 고생을 합니다. 제발 가정을 지켜주십시오. 너무 힘들어 쓰러지려 합니다.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새 출발하게 도와주세요”라고 호소했다고 판결문은 소개했다. 재판부는 그 엄마의 호소를 받아들였다. 현행법에서 감경할 수 있는 최대치인 징역 3년6월이 그 남편에게 선고됐다. 기사를 썼다. 다양한 댓글이 달렸다. “비참한 생활을 겪는 어머니의 심정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 선택은 아닌 것 같다.”, “저런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게 만든 사회보장제도를 보완할 문제지, 그 남편 형을 낮춰줘 풀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고생이 두려운 어머니 본인을 지키기 위한 이기적 판단은 아닌지 모르겠다.” 주로 그 엄마의 행동을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메일도 많이 왔다. 돕고 싶다고 했다. 충북 진천에 사는 두 자녀를 둔 가장으로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메일을 보낸다는 직장인도 있었고, 어떤 위로의 말로도 딸과 엄마의 상처를 치료할 수 없겠지만 경제적으로 작은 도움이 되고자 한다는 엄마도 있었다. 역시 고민을 했고, 그 엄마에게 뜻을 전했다. 계좌번호를 받았고, 답메일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한겨레 사회부 법조팀 송경화 기자입니다. 기사를 출고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기사가 나가니,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반응들이 쏟아졌습니다. 제 짧은 생각으로는 그런 결정을 내린 어머님을 비난해야 할지,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 가족의 사연을 통해 우리 사회가 생각해봐야 할 고민들이 더 많아졌고, 더 깊어진 것만큼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도움을 주겠다고 연락해온 분들이 많았습니다. 조심스러웠습니다. 어머님과 아이들에게 일시적으로나마 경제적 도움이 갈 수 있게 연결해드리는 게 맞는지. 메일을 보내주신 분들의 뜻을 충분히 전달했습니다. 조심스레 계좌번호를 불러주셨습니다. 관심 가져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올 겨울은 좀 더 따뜻했으면 좋겠습니다. 2009. 11. 19 그 엄마가 사회 제도 속에서 더 나아질 수 없는지 궁금했다. 기사를 쓰고 이곳저곳에 전활 돌려봤다. ‘그 일’이 일어나고 한 달 뒤 그 엄마는 관할 구청에 기초생활수급자 등록절차를 밟았다. 40만원밖에 받을 수 없었다. 전 남편 사이에서 낳은 딸과 아들은 수급대상이 되지 않았다. 구청과 보건복지부에 물어봤다. 전 남편과 모든 관계를 끊고 양육권도 혼자 책임지는 조건 하에 이혼을 했다는 그 엄마의 사연을 설명했다. 전 남편에게 경제력이 있는 것으로 확인돼 안 된다고 했다. 이혼의 양육권과 기초생활수급의 부양의무는 별개라고 했다. 지난달에 태어난 갓난아기는 수급 대상으로 등록이 돼, 이번 달부터는 69만4천원을 받게 된다고 했다. 그 엄마에게 설명을 했다.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했다. 애를 위해 열심히 살겠다고 했다. 다시 연락드리겠다고 했다. 경찰서에 입건됐던 예전의 ‘그 엄마’가 궁금했다. 오랜만에 전활 걸었다. 그 사건이 있은지도 1년 반이 지나 있었다. 애는 자라고 있었다. 남편은 여전히 아팠다. 생활은 여전히 힘들었다. 그 엄마는 “여전히, 너무, 너무 살기 힘들다”고 했다. 그 뒤 도움주시는 분은 없었냐, 시댁에선 연락 없냐, 애기는 잘 있냐 따위를 묻곤 전활 끊었다. 다시 연락드리겠다고 했다. 문득 궁금해졌다. 1년 반 뒤, 남편의 선처를 호소한 이번의 ‘그 엄마’에게 전활 걸면 어떤 얘기를 들을 수 있을까. 어떤 얘기를 나눌 수 있을까. 그 때, 전화 거는 게 두렵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전화 거는 게 두렵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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