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8월23일 송씨 일가 사건의 상고심 주심이었던 이일규 대법원 판사는 안기부의 압력에도 검찰조서의 임의성 문제를 들어 무죄 취지 파기환송 결정을 내렸다. 안기부는 이 판사를 한달 가까이 미행했으나 별다른 꼬투리를 잡을 수 없었다. 이 판사는 1988년부터 2년간 대법원장을 지냈다. 사진은 1990년 12월15일 퇴임식을 마친 뒤 대법원 청사를 나서는 이일규 대법원장(오른쪽). <한겨레> 자료사진
이일규 판사 “신체상 부당대우…증거능력 없다”
대법원장 비서실장 통한 ‘유죄압력’도 안 통해
안기부 ‘발칵’…25일간 이 판사 미행 ‘별무소득’
대법원장 비서실장 통한 ‘유죄압력’도 안 통해
안기부 ‘발칵’…25일간 이 판사 미행 ‘별무소득’
한홍구 교수가 쓰는 사법부-회한과 오욕의 역사 28. 송씨 일가 간첩사건과 사법부(4) 대법원장 비서실장을 통해 압력 시도 1983년 4월25일 열린 고등법원의 선고공판(재판장 이영모, 훗날 서울고등법원장과 헌법재판관 역임)에서 송씨 일가 사건의 피고인들은 모두 유죄를 선고받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2심에서 대폭 형이 낮아진 점이다.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된 송지섭과 송기준은 징역 25년 형으로, 무기징역이 선고된 송기섭은 15년, 15년이 선고된 한광수는 10년이 선고되었다. 2심에서 가장 혜택을 본 것은 송기복이었다. 군사기밀누설죄 부분에서 무죄판결을 받아 10년에서 2년으로 형량이 대폭 낮아졌다. 재판부는 신문 등에 보도된 널리 알려진 사항이라도 기밀에 속한다는 기존 판례를 따랐지만, “피고인이 그의 아버지인 재북간첩 송창섭이 피고인의 그 동안의 근황을 물어보는 데 대한 답변으로 이야기한 단순한 피고인의 신변에 관련된 사항에 불과한 사실은 위 법조 소정의 군사상의 기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안기부는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조금은 불안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사건을 배당받은 재판부(주심 이일규)가 “1981년 8월24일 안기부에서 송치한 재미교포간첩 홍선길에 대한 상고심 선고공판에서 간첩죄 부분을 인정치 않고 서울고법에 파기 환송한 사실이 있기” 때문이었다. 일자 미상의 <간첩 송지섭 사건 상고심 공판 대책 보고>란 안기부의 보고서를 보면 안기부는 “공안부장 및 공판 송무부 부장검사로 하여금 담당 재판부와 긴밀히 접촉, 각 피고들의 활동특성 등을 설명, 심증을 갖도록 하고 담당 간부들이 대법원장 비서실장을 만나, 최근 북괴의 대남전략전술 및 간첩사건의 특성 등을 설명, 동 비서실장으로 하여금 담당재판부에 반영시키도록 협조”한다는 대책을 세웠다. 안기부 대공수사국의 수사1단장과 2단장, 수사3과장과 5과장 등 주요 간부들은 대법원장 비서실장 가재환 판사를 초치하여 “최근 북괴의 대남전략 전술 및 간첩사건의 특성들을 설명, 동 비서실장으로 하여금 담당 재판부에 반영시키도록 협조”하는 조치를 취했다. 보고서는 사건담당 임휘윤 검사가 “본 사건 상고심에 있어 검찰 측 조서 및 법률 적용 등에 하자가 없으므로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고 끝을 맺었다.
대법원의 무죄판결 안기부가 대법원장 비서실장을 통해 상고심에 압력을 행사하려 한 시도는 효과가 없었다. 상고심의 주심 이일규 대법원 판사(재판장 전상석, 관여법관 이성렬·이회창)가 1983년 8월23일 검찰조서의 임의성 문제를 들어 무죄 취지 파기환송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일규 판사는 피고인들이 적게는 75일, 많게는 116일의 장기 불법 구금을 당하면서 인간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신체상 부당한 대우를 받았고, 검사가 구치소에서 피고인들을 조사하는 동안 안기부 수사관들이 구치소까지 찾아와 피고인들을 협박했다는 점을 중시했다. 그는 “피고인들의 검사에 대한 자백은 부당하게 장기화된 신체구속 후에 또다시 신체상의 고통을 받지나 않을까하는 불안하고 두려운 심리상태 하에서 한 임의성 없는 것이라고 의심할만한 이유가 있다고 할 것”이라면서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 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을 부인했다. 안기부는 발칵 뒤집혔다. 우선 안기부는 언론을 통제하여 이 판결이 크게 보도되지 못하도록 했다. 광복 이후 최대의 간첩단 적발이라고 요란하게 신문방송을 장식했던 이 사건의 무죄판결은 언론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안기부 수사5과는 바로 당일 <간첩 송지섭 상고심 파기환송에 따른 법원동향 보고>를 올렸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유태흥 대법원장은 “이일규 대법원 판사를 불러 파기 사유를 힐책하자 이일규는 기록검토 결과 피고인이 이북에 다녀오지 않은 것 같은 심증이 들어 파기환송한 것이라고 보고”했다. 유 대법원장은 또 “정지형 법원행정처 송무국장으로 하여금 판결문 및 공판기록을 검토, 보고토록 긴급지시하는 한편 가재환 비서실장에게도 판결문 검토 지시”를 했고, “가재환 비서실장으로부터 이일규 판사의 판결대로 확정될 경우 수사기관의 간첩조사가 불능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 간첩사건 재판에 큰 문제점이 있다는 보고를 받고 지난번 홍선길 간첩 사건 판결 때 그렇게 이야기 했는데도 또 그런 판결을 내렸다는 것은 그 저의가 의심된다며 무슨 수를 써서라도 판결을 바로잡아야겠다고 다짐하면서 그런 사람은 규탄을 받아야 마땅하므로 가만히 둘 수 없다고 흥분”했다는 것이다. 발칵 뒤집힌 안기부 그러나 이일규 전 대법원장은 필자와의 면담에서 홍선길 판결 때나 송씨 일가 판결 전후로 대학동창인 유태흥 당시 대법원장에게 어떠한 압력도 받은 바 없다고 회고했다. 그는 송씨 일가 사건 때문이었는지는 기억이 확실치는 않지만 대법원장 비서실을 통해서 몇 차례 안기부 직원이 이러이러한 사건과 관련하여 왔다 갔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지만, “우리는 다만 사건 기록을 검토해서 결정할 뿐”이라고 거절했다고 한다. 이어서 안기부는 구체적으로 문제점 분석과 대책 마련에 나섰다. 작성 날짜가 불분명한 <서울, 충북 중심 고정간첩단 사건 대법원 파기환송에 따른 문제점 분석 보고>에서는 “명백한 사실상의 간첩사건을 무죄 선고할 경우” “현재 공판계류중이거나 향후 송치될 수사중인 간첩사건에 대해서도 사사건건 선임변호사가 본건 판례를 인용, ‘수사기관에서의 장기구금으로 인한 검찰조서의 증거능력 배척’을 주장하여 간첩사건 재판법정이 장기구금, 고문 시비장화함은 물론 하급심 판결에 지대한 파급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안기부는 “간첩사건 수사에 있어 일반 형사사건과 같이 검거 후 48시간 이내에 구증, 구속영장을 신청할 것이 요구된다면 간첩수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고백했다. 안기부는 간첩이 대공수사기관의 장기간 구금 이유로 무죄 방면될 경우 “국민대공신고체제의 막심한 차질”이 발생할 것이고, “수사당국의 공신력 실추로 앞으로의 간첩사건 보도에 대한 국민홍보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안기부는 이러한 상황에 대한 ‘조치 건의’로 “우리나라의 특수 안보 환경과 대공수사 요원들의 애국충정을 깊이 통찰, 국가안보적 차원에서 유죄판결 건의”를 내놓았다. 이일규 대법원 판사에 대한 미행조사 대법원 판결 다음날 작성된 <간첩 송지섭 사건 상고심 선고 공판 및 대책보고>라는 안기부의 또다른 보고서는 이일규 대법원 판사가 안기부가 검거한 홍선길 간첩사건도 파기환송한 장본인임을 환기시키면서 그가 “대공사건에 관하여는 상습적으로 애매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법관”이라며 “안보사건에 대한 태도가 선명하지 못한 이일규 판사에 대하여는 배후와 동향을 내사, 인사에 반영”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 보고서에는 이일규 대법원 판사 이외에 전상석, 이성렬, 이회창 대법원 판사의 인물조사서가 첨부되어 있다. 안기부 작성 인물조사서는 아마도 많은 법관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 인물조사서에는 학력과 경력, 가족관계 이외에 별다른 내용이 기재되어 있지 않다. 다른 대법원 판사들의 경우 사상, 성품은 모두 온건이나 온순으로 되어 있고, 참고사항에는 아무 내용도 기재되어 있지 않다. 이일규 판사에 대해서는 성품 난에 “냉정(고집쟁이)”, 참고사항에 “김재규 사건 이의제기”라고만 적혀 있을 뿐이다. 국정원 존안 자료 중 1983년 9월 날짜 미상 <문제법관 이일규 신원 및 동향감시 결과보고>라는 문서가 있는데 이 보고서에는 선고 사흘 후인 1983년 8월26일부터 9월19일까지 25일간 이일규 판사의 일거수일투족을 미행 감시한 결과가 정리되어 있다. 매일 몇 시에 출근해서 몇 시에 퇴근하는지, 식사는 주로 어디에서 하는지, 주말에는 무엇을 하는지 등을 일일이 미행, 보고한데다가 부인 명의로 대전에 토지 3필지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조사해서 적어 놓았다. 이 보고서에는 이일규 판사의 사진, 주택 사진, 자동차의 뒷모습 사진, 그가 자주 가는 한정식집 사진 등이 첨부되어 있다. 도둑 위장해 이일규 판사 집안까지 뒤진 듯 이일규 전 대법원장은 필자와의 면담에서 송씨 일가 사건 판결 즈음해서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안기부에서 나를 미행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 적이 몇 번 있었다고 말했다. 하루는 손녀가 병원에 입원하여 매일 다니던 길 대신 다른 길로 병원에 들러 출근하였는데, 어떤 사람들이 병실로 찾아와 자신에게 이야기하지 말라면서 아들에게 이일규 판사와의 관계와 그가 다녀간 용건을 꼬치꼬치 캐물었다는 것이다.
한홍구 교수가 쓰는 사법부-회한과 오욕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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