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FTA비준안 일방처리 항의 의원에 일부 무죄·벌금형
국회 상임위원회 위원장이 해당 위원회 회의장에서 소란행위가 일어날 것이라는 예상만으로 사전에 ‘질서유지권’을 발동한 것은 위법한 조처라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서울남부지법 형사9단독 김태광 판사는 23일, 지난해 12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의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외통위) 상정 과정에서 한나라당의 일방적 회의 소집에 항의하며 국회 경위들을 밀치거나(공무집행 방해) 회의장 출입문 등을 부순 혐의(공용물건 손상)로 기소된 민주당 문학진,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 등 8명에게 일부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국회 상임위 위원장의 질서유지권은 ‘사후적 질서유지’에 제한되므로, 장래 소란행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개연성만으로 질서유지권을 발동한 것은 국회법 규정에 어긋나는 것”이라며 “따라서 당시 국회 공무원들의 회의장 질서 유지에 관한 직무집행은 적법성을 결여한 것으로, 피고인들이 그들의 옷을 잡아당기거나 밀치는 등 폭행을 했다 하더라도 공무집행 방해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재판부는 “국회 내에서의 폭력은 어떤 경우에도 용납될 수 없으므로 이들을 무겁게 처벌해야 마땅하겠지만, 외통위 위원장의 무리한 질서유지권 발동도 이 사건을 일으킨 하나의 원인이 되었다”며 공용물건 손상 혐의만 유죄를 인정해 문학진·이정희 두 의원에게 각각 벌금 200만원과 50만원을 선고했다. 또 불구속 기소된 민주당 당직자 등 6명에게도 같은 혐의를 적용해 벌금 300만~500만원을 선고했다.
이날 판결에 대해 검찰은 “당시 국회 경위는 적법한 공무집행을 한 것”이라며 “즉각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문학진·이정희 의원 등은 지난해 12월18일 박진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위원장이 한나라당 의원들만으로 전체회의를 소집한 상태에서 회의장 문을 봉쇄하고 야당 의원들의 출입을 막자 다른 의원·당직자들과 함께 국회 경위들을 밀치고 출입문 손잡이를 부수는 등 공무집행을 방해한 혐의 등으로 검찰에 불구속 기소됐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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