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는 말하고, 민간위원장은 받아적고 정운찬 총리(맨 오른쪽)가 23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열린 세종시 민관합동위원 회의에서 세종시 자족기능 추진 방안에 대해 말하는 동안, 송석구 민간위원장(맨 앞)이 이 내용을 받아 적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교육과학도시’ 참여정부때 이미 검토…현실성 낮아 폐기
기업 특혜·연구기관 이전도 확정된 16곳 포함 ‘재포장’
기업 특혜·연구기관 이전도 확정된 16곳 포함 ‘재포장’
민관합동위, 수정안 윤곽
정부가 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시)의 성격을 교육과학중심 경제도시로 변경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를 위해 자족기능을 수도권 및 국외에서 유치하거나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가 추진하는 교육과학 도시는 이미 노무현 정부 때 검토됐다가 실효성 부족으로 폐기된 방안이다. 연구기관과 문화시설 유치 역시 지난 정부에서 마련한 방안의 재탕이다. 여기에 기업과 교육기관 유치를 위해 행정도시에 갖은 특혜를 퍼붓기로 해 형평성 논란마저 일으키고 있다.
세종시 민관합동위원회는 23일 정부중앙청사에서 두 번째 회의를 열었다. 정운찬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이 회의에서, 위원회 위원 다수는 세종시의 성격을 두고 “교육과학중심 경제도시로 변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뜻을 모았다. 첨단녹색지식산업도시, 창조산업도시, 과학도시란 의견도 나왔고, 행정도시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또 위원회는 기업이나 교육·연구·문화 시설이 행정도시로 몰리지 않도록 행정도시의 자족기능 유치 대상을 △수도권에서 이전 △국외에서 유치 △새로운 기능 등 세 부문으로 한정하기로 했다. 이에 앞서 지식경제부 등 각 부처는 자족기능 확충 방안을 위원회에 보고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자족기능 방안은 이미 추진됐으며, 일부는 폐기된 것이기도 하다.
우선, 과학교육 도시 방안은 노무현 정부 때 행정수도 건설이 위헌 결정을 받은 뒤 검토된 세 가지 대안 가운데 하나다. 당시 정부는 이 방안이 국가 균형발전 선도 효과가 미흡하다는 이유로 폐기했으나, 현 정부는 이에 대한 아무런 설명 없이 다시 들고 나왔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지역도시계획학과)는 “교육과학 도시 방안은 노무현 정부 당시 행정부처의 이전 없이는 실현이 어렵다고 평가돼 폐기됐다”며 “정부가 행정기능을 뺀 이런 도시를 만들어서 자족성을 갖추고 지역 균형발전을 선도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지 몹시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연구기관 이전 문제도 노무현 정부 때 결정한 16개 연구기관 이전 방안에 입주가 불확실한 6개 국내외 연구기관을 추가하는 것으로 다시 포장됐다. 그러나 16개 연구기관의 이전은 부처 이전과 연계한다고 밝혀 취소될 가능성이 크다. 16개 연구기관은 모두 중앙부처 소속 연구기관이기 때문이다. 국립박물관·공연장·예술대학 등 문화시설 유치 방안도 노무현 정부의 자족성 확보 방안에 모두 포함된 내용이다.
정부는 기업들을 유치하기 위해 세금 면제, 보조금 지급, 외국인 투자지역 지정, 산업용지 저가 공급, 주거여건 개선 등 파격적 지원방안을 내놓았다. 또 중앙·지방 정부가 3400억원을 지원해 8개의 초·중·고등 외국인학교와 외국 교육기관을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런 특혜는 전국의 혁신도시·기업도시·경제자유구역·첨단의료복합단지 건설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변창흠 세종대 교수는 “기업·교육기관을 수도권이나 해외에서 유치하는 경우에도 다른 지방은 배제되고 행정도시에는 집중될 수밖에 없다”며 “전국의 균형발전 차원에서 추진해온 행정도시에 기업·교육·연구기관을 집중시키겠다고 하니 황당할 뿐”이라고 말했다.
김규원 기자 che@hani.co.kr
김규원 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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