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포로체험 산문 발굴
‘풀’의 시인 김수영(1921~68)씨가 한국전쟁 당시의 포로 체험을 쓴 미공개 산문 한 편이 24일 발견됐다.
계간 <세계의 문학>은 27일 출간되는 겨울호(통권 134호)에 김 시인의 산문 ‘나는 이렇게 석방되었다’를 사진과 함께 실었다. 이 글은 시인이 월간 <희망> 1953년 8월호에 발표한 것으로, 그동안 학계에 알려지지 않았다가 서지연구가 문승묵씨의 제보로 처음 공개됐다.
김 시인은 원고지 30장 분량의 이 글에서 6·25 전쟁 직후 의용군으로 끌려갔다가 두 번의 탈출 시도 끝에 50년 10월28일 서울로 돌아왔다가 또다시 붙잡혀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들어간 과정과, 부상을 입어 병원에 갔다가 25개월 만에 석방된 이야기를 자세하게 들려주고 있다.
의용군에서 탈출했을 때 “서울의 거리는 살벌하였다.… 6·25 전의 서울, 그 호화로웠던 서울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직장에서 피해 나오는 사무원 같은 선남선녀들의 몸맵시에는 내가 오래 굶주리고 있던 서울의 냄새가 담겨 있었다”고 회상한 그는 석방의 감격을 되새기는 말로 글을 맺는다.
“너무 기뻐서 나는 집으로 돌아갈 생각도 잘 할 수 없었다. 길거리-오래간만에 보는 길거리에는 도처에 아이젠 하워 장군의 환영 포스터가 부착되어 있었다. 나는 그의 빙그레 웃고 있는 얼굴을 십분이고 이십분이고 얼빠진 사람처럼 들여다보고 서 있었다.”
최근 <김수영 육필 시고 전집>을 묶어낸 이영준 박사는 해설에서 “이 글은 한국전쟁 시기 김수영 시인의 행적에 관한 결정적 자료”라며 “53년 5월 전쟁 체험을 소재로 쓴 시 ‘조국으로 돌아오신 상병포로 동지들에게’ 직후에 썼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이 박사는 이어 “이 글은 편집자가 수기라고 표기하고 있지만 정작 포로수용소에서의 체험은 생략돼 있다”며 “매우 복합적인 독서 행위를 요하는, 드러낸 것과 숨긴 것 사이의 낙차가 고도의 압력을 만들어내는 글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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