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본부가 세종시 캠퍼스 조성 논란에 대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논란이 되는 세종시 문제에 확실한 의견을 냈다가 자칫 공들여 추진해온 법인화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다.
서울대는 지금까지 제기된 세종시 캠퍼스 조성 추진 의혹에 대해 묵묵부답이거나 “정해진 게 없다”는 원론적 수준의 답변만 내놓고 있다. 지난 20일에는 세종시 이전 대상으로 논의되고 있는 주요 단과대를 모아 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가 언론에 알려지자 2차 모임을 취소했다. 본부는 모임의 성격에 대해 “언론보도에 대한 대응책을 검토하는 차원이었다”고 설명하나, 어느 단과대가 참가했는지, 인문대 등 세종시 이전을 검토하지 않은 단과대까지 참여시킨 이유 등에 대해서는 "밝히는 것 자체가 또 다른 논란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며 입을 닫았다.
그러나 24일 일부 언론을 통해 서울대가 법인화 성사를 위해 세종시 캠퍼스 조성을 놓고 정부와 물밑협상(빅딜)을 한다는 논란이 불거지자, 그동안 말을 아끼던 이장무 총장이 직접 해명에 나섰다. 이 총장은 전체 교직원들에게 전자우편을 보내 “우리 대학은 (세종시 캠퍼스 조성에 대해) 아직 공식적 입장이나 대안을 설정한 바 없다”며 “정부의 기본적 방침이 발표되면 논의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최근 불거진 법인화와 세종시 캠퍼스 물밑협상(빅딜) 의혹에 대해서는 “지성의 전당을 자부하는 대학에서는 용납하기 어려운 행위”라며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사실 이 총장은 전날 서울대가 세종시 캠퍼스 조성을 추진한다는 의혹을 반박하기 위해 기자회견까지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서울대의 입장을 분명히 할 경우 또 다른 논란의 소지를 불러올 수 있고,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는 모습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는 내부 의견에 따라 다소 차분한 형태로 해명에 나섰다.
본부가 이런 논란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이유는 법인화 때문이다. 법인화 통과를 위해서는 국회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어느 한쪽의 입장을 편드는 모양새로 비춰질 경우 여야 어느쪽이든 미운털이 박힐 수 있다. 또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상당수가 세종시 수정안을 반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와 발맞춰나간다는 인상을 준다는 건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법인화-세종시 빅딜설은 서울대로서는 손해를 입은 셈이다. 법인화 반대 여론에 힘을 실어주는 결과가 됐기 때문이다. 벌써 자유선진당 이상민 의원은 24일 논평을 내 "서울대가 법인화를 위해 정부와 이면거래를 한다면 응분의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대가 정부와 빅딜을 할 의사는 별로 없는 듯하다. 정부와 협상을 해서 실익을 얻을 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협상을 한다면 법안 통과 여부를 결정하는 국회와 해야 하는 것이지, 정부와 할 일은 아니다. 정부가 올해 말 서울대 안을 대폭 수용한 법안을 국회에 제출한다고 해도 해당 상임위 심사를 거쳐야하고, 올해 국회 통과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내년이 돼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이슈로 법인화 문제는 뒷전으로 밀릴 가능성이 높다. 지방선거 뒤에는 선거 결과에 따라 정국의 방향이 어떻게 흘러갈지 장담할 수 없다. 또 내년 중순이면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가 절반을 넘긴다. 법안 심의가 늦춰질수록 법인화 동력은 계속 떨어질 것이다. 결국 현 정권에서 서울대법인화 법안은 국회 상정도 못해보고 그대로 '아웃'될지 모른다. 서울대가 두려워하는 것도 바로 그 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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