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블로그] 어느 기사를 보고 느낀 것

등록 2009-11-26 14:58

아침에 일어나 인터넷뉴스를 검색하다가 독일 나치정권 때 유대인을 학살한 가담자를 검거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오스트리아에서 대학을 다니는 학생이 붙잡았는데 그는 아돌프 슈트름스로라는 사람으로 금년 90세의 노인이라고 한다. 은퇴 전까지 독일의 한 철도역의 책임자로 근무한 경력도 가지고 있단다. 1945.3 28일 히틀러 친위대인 유겐트(나치 청소년조직)로 유대 노역자 58명 학살에 가담한 혐의를 받고 있단다.

그 죄값으로 나치정권이 패망한지 54이 지나서 법의 심판을 받게 된 셈이다. 이 보도를 접하면서 나의 머리속에 문득 떠오르는 생각은 홀로코스트나 민족배반 범죄를 저질은 자는 끝까지 추격되어 응징되는구나 하는 것이다. 서구에서는 진작부터 이들 범죄에 대해서는 시효까지 없애가면서 단호히 처벌을 하고 있단다.

그중 프랑스의 예이다. 프랑스에서는 이미 침략국 나치 독일이 물러나자 협력자 90%이상을 처단했지만, 지금도 남은 잔당을 잡아내기 위해서 집요하게 추적하고 있다고 한다. 섬뜩하기도 하지만 왠지 존경스러운 생각도 든다. 왜 이런 행위가 특별하게 느껴지며 관심이 가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우리나라 사정과는 달라도 너무 달라서 그런 것이 아닐까.

우리나라가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나서 해방을 맞은 지도 65년이다. 그런데도 제대로 된 역사청산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아니, 반민족특위가 구성되어 활동을 조금 했으나 방해를 받고서 유야무야되었다고 들었다. 이런 마당에 일부에서는 염장을 지르듯 세월이 흐른 만큼 흘렀으니 그냥 덮고 가자는 말까지 나온다.

심지어는 친일의 당위성까지 늘어놓으며, 차마 매국노 이완용이 말한 ‘어차피 망해가는 나라에 조금 협력했을 뿐’이라고 까지는 말하지 못하지만, 적당히 당시상황을 호도하며 ‘그때는 살기 위해 어쩔 수가 없었다’는 괴변을 늘어놓는다.


최근,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오랜 작업 끝에 친일인명사전을 내놓았다. 정부 지원도 끊긴 가운데 국민성금으로 어렵게 펴낸 성과물이다. 여기에는 수록인사가 무려 4476명이다. 이는 기본자료 2만 여 건을 검토한 결과물이라고 한다.

이것을 만들어 발표하는 과정에서 진통도 적지 않았다. 억울하게 명단에 포함됐다는 항의가 많았던 것이다. 하나, 그 문제는 연구소에서 해명할 일이고, 놀라운 일은 결코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어야 할 사람들이 들어있다는 사실이다. 적어도 국민정서상 그렇다. 그런 사람의 명단을 보며 실망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나는 이들의 명단을 훑어보다가 유독 눈에 들어오는 사람 한명을 발견했다. 당연히 그 이름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최인태라는 사람. 일제시대 광주경찰서에서 고등계 형사로 근무하며 악질적으로 의병활동을 탄압한 장본인이다. 그는 1912년 의병활동 토벌공적으로 소위 ‘한국병합기념장’을 받은 사람이다.

그의 행적을 보면 분노가 끓어오른다. 당시 조국은 명성황후 시해사건 이 후, 의병활동이 들불처럼 일어나고 있었다. 호남지방에서만 해도 화순 능주를 중심으로 양회일(梁會一)의병장과, 보성에서 안규홍과 임창모(林昌模)의병장이 활발한 활동을 했다. 그러나 당시 양회일의병장은 광주관아를 습격하다 체포되어 장흥감옥에서 단식으로 순절하고, 안규홍의병장도 마침내 붙잡혀 대구형무소에서 교수형을 당하고 말았다.

그렇지만 임창모 의병장은 용케 몸을 숨겨가며 병력을 재정비해 전투를 계속하고 있었다. 이때는 이미 순종임금도 의병해산명령을 내린 터라 의기소침해 있던 때였다. 하지만 임창모의병장은 그것이 강압에 의한 것임을 알고 더욱 극렬하게 저항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다, 임창모 의병장은 대원 9명을 이끌고 보성 복내 흑석촌으로 은밀하게 잠입하게 된다. 그런데, 정보순사의 촉수는 그곳에도 뻗혀 있었다. 심어놓은 정보원은 지체없이 최진태에게 보고가 되고 그는 동료인 오오야마와 함께 대기중인 토벌대 69대대 10중대와 임시한국보병 2연대 8대대을 안내하여 쳐들어왔다.

당시에 전해오는 생생한 증언 내용이다. 아들 학규와 함께 있던 임창모 의병장은 몸을 피하면서 결전을 벌였다. 그러나 워낙 수적인 열세를 어쩔 수가 없었다. 임창모 의병장은 그만 총을 맞고 쓰러졌다. 그러자 아들이 절규했다. “이 무도한 놈들아, 왜 우리 아버지에게 총을 쓰느냐” 그러나 그것도 찰라의 비명일 뿐이었다. 이어서 아들마저 총을 맞은 것이다.

날이 밝아 시신을 수습하면서 보니 임창모 의병장은 하늘을 향해 눈을 부릅뜨고 쓰려져 있고, 아들은 부여안고 있는데 역시 눈을 감지 못하고 있더란다.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그랬을까. 그리고 누구를 위해서 죽어갔던 것일까.

깊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이 걸 보더라도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살다간 사람과 그렇지 않고 오직 자기 일신의 영달만을 위해 나라야 망하든지 말든지 자기혼자만 잘살겠다고 잇속이나 챙긴 사람을 똑같이 대접하고 반열에 놓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에 유야무야 하고 만다면 어찌 정의가 바로 서며 백성과 나라를 지킬 사람인들 있을 것인가.

들리는 말로는 부역자들이 치욕적인 부역행위로 축재한 재산을 자손에게 물러주어 떵떵거리고 사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이야기다. 반면에, 독립운동가 후손은 패가망신을 하거나 직업을 가져도 가장 밑바닥인 경비원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고 한다. 얼마나 모순인가.

그런 저런 것을 생각하면, 꼭 무슨 복수를 한 것이 좋고, 바라서가 아니라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라도 친일 문제는 한번쯤 꼭 짚어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다. 그런 생각때문인지 홀로코스트 가담자를 쫓고 민족반역자를 응징하고 있는 나라들이 여간 부럽고 달라 보이는 것이 아니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한겨레 블로그 내가 만드는 미디어 세상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