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자기결정권 부정” 6대3 의견…56년만에 조항 폐지
형법의 혼인빙자간음죄 조항이 제정 56년 만에 위헌 선고를 받았다. 이에 따라 현재 이 죄에 해당해 기소된 사람들은 곧바로 공소가 취소되며, 1953년 법 제정 뒤 처벌을 받은 사람들은 재심 청구 등을 통해 무죄 선고와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됐다.
헌법재판소는 26일 결혼을 미끼로 여성을 속여 성관계를 맺은 남성을 처벌토록 한 형법 제304조가 “성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부정하고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한다”며 재판관 6(위헌) 대 3(합헌) 의견으로 위헌 결정했다. 이 조항은 ‘혼인을 빙자하거나 기타 위계로써 음행의 상습 없는 부녀를 기망해 간음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재는 “남성이 폭행이나 협박 등이 아닌 방법으로 여성을 유혹하는 성적 행위에 국가가 개입하는 것은 억제돼야 한다”며, △유혹의 방법은 남성의 내밀한 성적 자기결정권의 영역에 속하고 △애정 행위는 그 속성상 과장이 수반되며 △형법이 혼전 성관계를 처벌하지 않는데도 그 과정에서 이뤄지는 유도 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밝혔다.
또 헌재는 “혼전 성관계를 스스로 결정한 여성이 나중에 착오라고 주장하는 것은 자신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부인하는 것”이라며 “‘음행의 상습 없는 부녀’만을 보호하는 것은 고전적 정조관념에 기초한 가부장적·도덕주의적 성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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