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함 몰래 열어보고
선관위는 특정후보 감싸
서울대·이대 등 몸살
선관위는 특정후보 감싸
서울대·이대 등 몸살
서울대, 이화여대 등 각 대학의 2010학년도 총학생회 선거가 ‘부정선거’ 논란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학생들의 무관심으로 가뜩이나 왜소해진 터에 도덕성 논란까지 불거진 것인데, 학교 안팎에선 “곪아 있던 게 터졌다”는 반응이 나온다.
서울대는 최근 총학생회 선거 과정에서 ‘투표함을 몰래 열어 봤다’는 의혹이 제기돼 선거관리위원장이 사퇴하고, 지난 1일부터 재투표가 실시되고 있다. 모든 선관위원들을 대상으로 공개청문회도 곧 열릴 예정이다. 이화여대도 지난달 15일 선관위가 경고 누적을 이유로 특정 후보를 등록 말소했고, 이에 일부 선관위원과 다른 후보가 자진 사퇴하는 파행을 겪었다. 4년째 특정 학과에서 학생회장이 배출된 용인대는 투표함 바꿔치기 및 탈취 논란으로 경찰 조사까지 받고 있다.
이들 대학은 선관위가 현재의 총학생회 간부들로 구성돼 있어 출발부터 공정성을 의심받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화여대 한 학생은 “총학생회 쪽이 선거 세칙을 바꿔 선관위원에 새로 부총학생회장까지 넣는 바람에 불신을 촉발했다”고 주장했다.
유독 올해 이런 논란이 격화되는 것을 두고 ‘세력 이동’ 때문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문제가 된 대학들은 최근 2~4년간 이른바 ‘비운동권’ 학생들이 총학생회장에 당선됐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출범과 촛불시위 이후 다시 ‘운동권’ 학생들이 힘을 얻자, 기존 조직들이 상대편을 견제하며 무리수를 두게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현직 학생회 관계자들은 더욱 근본적인 변화를 지적한다. 우선 총학생회에 도전하는 학생들이 이제는 운동권과 비운동권의 경계가 흐릿해졌고, 종류도 다양해졌다. 평균 2~4명의 후보가 출마하던 연세대 총학생회장 선거엔 올해 6명의 후보가 출마했다. 서울대도 이례적으로 5명이 입후보했다.
학생운동 진영 내부에서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분리 등이 영향을 끼치고 있다. 여기에 일부 학생들은 학생회장 출마를 사회 진출과 취업을 위한 ‘경력 관리’ 차원으로 생각하는 경향까지 가세했다. 대학생 정아무개(22)씨는 “명문대 총학생회장 출신이라는 타이틀은 여전히 무시 못하는 경력”이라며 “정치성향이 없는 학생들이 개인적으로 총학 선거에 많이 출마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대학생들이 ‘권력투쟁’을 벌인다 해도, 최소한 민주적 규칙을 지키면서 해야 한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2003년 서울의 한 대학 총학생회장을 지낸 조아무개(30)씨는 “이제는 운동권·비운동권의 구분이 문제가 아니라, 학생 자치활동을 통해 민주적 소양을 쌓는다는 측면에서 민주주의 원칙을 다시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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